어릴 때 폭행이나 성적 학대, 방임 등으로 정신적 충격(트라우마)을 겪으면 어른이 돼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를 국내 연구진이 처음으로 밝혔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이동수, 전홍진(정신건강의학과), 강은수(진단검사의학과) 교수팀은 미국 하버드의대 MGH병원 정신과와 함께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손상된 뇌신경을 치료해주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내 국제학술지 '정신의학연구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 105명과 건강한 사람 50명을 대상으로 혈중 BDNF의 농도를 검사한 뒤 트마우마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트라우마가 깊은 사람은 혈액의 주요 구성물질인 혈소판 속 BNDF 농도는 건강한 사람보다 높았지만,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는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리면 혈액 속 농도가 오히려 낮아졌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우울증이 나타날 때 BNDF가 세포 안팎으로 이동하는 경로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해석했다. 현재 의학계에선 혈중 BNDF 농도가 크게 떨어지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고 치료도 어렵다고 보고 있다. BNDF가 혈액 속에서 얼마나 원활히 이동하고 활용되는지가 우울증 발병이나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어릴 적 트라우마의 충격이 클수록 혈소판과 혈액의 BNDF 농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환자들이 겪은 여러 형태의 트라우마 중 농도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난 건 성적학대다. 지속적 폭행, 큰 사고, 폭언이나 방임 같은 정서적 학대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전 교수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우울증 환자는 특히 치료가 어렵다"며 "그 원인이 BNDF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앞으로 난치성 우울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로 어린이가 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자라서 우울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생리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연구팀은 "정신적으로 힘든 경험을 한 어린이에게 부모와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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