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위경련이 나서 병원을 찾곤 한다. 통증의 한계에 굴복하여 병원에 도착했다가도 순간 말짱해지는 기분이 되는 건 이 침대 저 침대를 차지한 여러 환자들을 마주하게 되면서다.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이가 있는가 하면, 부부싸움하다 홧김에 불을 질러 화상을 입은 이에, 술에 취해 업혀 들어 온 교복 입은 여중생까지 다양한 사연과 병명으로 드러누운 이가 많은 응급실 풍경이라니.
경찰서와 더불어 병원은 왜 이렇게 사람을 굴곡진 사연의 덩어리로 만들까. 내 차례가 되어 피 검사와 소변 검사를 한 뒤 위의 통증을 가라앉힌다는 링거 한 병을 꽂고 누웠는데 문득 옆 침대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던 한 남자의 발이 침대 밖으로 삐죽 새어 나와 있던 것이었다. 숯처럼 새까만 발, 몹시도 시려 보이던 그 발끝에 시선이 머물기도 잠시, 웅성거리는 소란 끝에 젊은 의사가 그의 사망을 선고했다.
연고가 없는 노숙자였던 그의 죽음은 그 후 어떻게 처리 되었을까. 누가 그를 위해 울어주고 누가 그의 화장된 시신을 바람에 날려 주었을까. 그걸 묻는 내게 의사가 말했다. 그런 별 걱정을 다하니까 아픈 거예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면 살아야지, 살아봐야지 죽 떠먹어가며 삶의 의지를 다지는 나. 가끔 병원도 가 볼만한 곳이라니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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