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부터 의사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었던 사후피임약(긴급피임약)을 약국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고, 사전피임약은 의사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7일 12년만에 6,879개 의약품을 재분류한 안을 발표해 1.3%(526개)의 분류를 바꿨다. 전문약으로 취급되던 사후피임약 12개 품목 중 신약 엘라원정을 제외하고 노레보정 등 11개가 일반약으로 바뀌었다. 마이보라 등 일반약이던 사전피임약은 9개가 전문약으로 묶이면서 11개 품목 모두 전문약으로 분류됐다. 국제적으로도 사전피임약은 전문약, 사후피임약은 일반약 분류가 일반적이다.
사후피임약에는 사전피임약보다 호르몬제인 레보노르게스트렐이 10배 이상 많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식약청이 이렇게 분류를 바꾸기로 한 가장 큰 근거는 복용 기간이다. 사전피임약은 매달 3주씩 반복 복용하지만, 사후피임약은 1회 응급약으로 사용해 오히려 부작용이 적다는 것.
우선 사전피임약은 혈전색전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혈관계 부작용이 나타난다. 해외 사례 중 여성 복용자 10만명 당 연간 20~40건의 정맥성 혈전색전증이 보고됐다. 흡연자, 유방암, 자궁 내막암 의심 환자나 병력이 있는 환자에게 투약해서는 안되고, 40세 이상 여성, 비만, 편두통, 우울증 환자 등에는 신중하게 투여해야 한다. 이 정도라면 오히려 과거 산아제한 정책 때문에 도입 후 44년 동안이나 일반약으로 둔 것을 문제 삼아야 할 지경이다. 식약청이 조사한 외국 8개국은 모두 전문약으로 분류돼 있다.
반면 사후피임약은 구토, 구역, 일시적 생리주기 변화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이틀 안에 사라지고,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 우려는 없다고 식약청은 밝혔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출혈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식약청은 사후피임약 허가를 내주면서 "월 1회를 초과해 사용하면 생리주기에 영향을 미치고 피임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적시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한 달에 4차례 사후피임약을 사용했을 때, 70%에서 월경 관련 부작용이 나타났다. 임상시험 대상 여성 300명 중 3분의 1이 지속적 출혈로 인해 6개월 기간의 임상시험을 마치지 못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은 "사후피임약 복용 후 부작용으로 출혈이 있을 때, 이를 월경으로 착각해 임신여부를 진단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식약청은 "청소년 등은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사용토록 연령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영국에서도 각각 17, 16세 미만은 의사 처방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착란, 환각 등의 부작용이 있는 멀미패취제 키미테는 어린이용만 전문약으로 전환된다. 떼어내면 부작용이 없어지지만, 어린이의 경우 떼어내는 대처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우루사정은 '간기능 개선제'로 알고 있는 100㎎ 이하 품목은 지금처럼 일반약으로 남겨놓고 담석증, 원발 쓸개관 간경화증 등 의사의 진단이 필요한 질환에 사용되는 200㎎, 250㎎의 고함량 제품을 전문약으로 전환키로 했다.
여드름 치료제인 클린다마이신 외용액제의 경우, 보통 6~8주를 사용해야 하는데 여드름균 이외에 포도상구균과 같은 다른 균종에 내성이 발생할 수 있어 전문약으로 전환한다.
식약청은 공청회를 거쳐 이르면 다음달 재분류안을 확정, 내년 초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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