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를 잡아야 승리한다'는 말은 요즘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선거의 제1 원칙이다. 4·11 총선에서 중도층 표심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됐다. 유권자들은 어느 때보다 먹고 살기와는 상관 없는 정치권의 좌우 노선 싸움과 진영논리에 치를 떨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중도 지대를 선점하기 위해 각각 '좌 클릭'과 '우 클릭'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이에 따라 정치권을 지배하던 '이념'은 희미해지고, '민생'이 전면에 등장했다.
새누리당의 좌클릭 행보를 상징하는 것은 '빨강'과 '경제 민주화'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2월 당의 상징색을 파랑에서 좌파의 색깔인 빨강으로 바꿨다. 정통 보수 기조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새누리당은 이어 경제 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강정책을 발표했고 복지 확대와 약자 보호, 재벌 개혁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자ㆍ기득권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성장제일주의,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분배와 국가 개입에 관심을 갖는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새누리당에선 감세나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 보기 어렵다.
새누리당이 내건 4ㆍ11 총선 공약의 골자는'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공정 거래와 약자 배려로 요약된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근절과 중소기업 적합 업종 확대 ▦하도급 부당 단가 인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대기업 주주 일가와 임원의 법률 위반 시 엄중 제재 ▦노인 근로장려세제 도입 ▦0~5세 양육수당 모든 계층 지원 등이 포함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달 30일 국회가 개원하자 마자 비정규직 보호법, 맞춤형 복지 관련법, 중소기업지원법 등 12개 법안을 제출했다.
새누리당은 대선 정국에서 강경 일변도인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을 다소 유연하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김영우 대변인은 "북한이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위협하는 것에 대해선 앞으로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에서도 4ㆍ11 총선 패배를 계기로 '중도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 과정에서 불거진 '중도냐 진보냐'하는 정체성 논란에서 벗어나 집권을 위해 중도와 진보를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당에 덧씌워진 '불확실한 노선 정당'이란 이미지를 벗고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작성한 '4ㆍ11 총선 평가와 과제'라는 보고서는 총선 패배 원인으로 이슈 관리 실패를 꼽았다. 총선 기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등의 현안 대응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의 좌편향 노선에 끌려 다니다 보니 민주당이 선점한 보편적 복지, 경제 민주화 등의 이슈를 살리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중도층에 다시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보고서는 중도층을 '탈이념적이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진보적인 가치에 동의하는 유권자'로 규정하고, 실생활과 밀접한 생활정치로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지향하는 가치는 중도진보이자 실현 가능한 진보"라고 설명했다. 진보적 정체성을 지키되, 중도 노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구성된 민주당 민생공약실천특위는 19대 국회 '민생 최우선 8대 의제와 19개 법안'을 선정하고, 반값등록금 법안을 총선 공약 1호 법안의 하나로 제출했다. 이밖에 ▦기초노령연금 인상 ▦대기업의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진입 시 처벌 ▦대부업체의 법정이자율 인하 등을 위한 법안 등이 포함됐다. 이 정책위의장은 "새누리당도 민생, 복지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민주당은 구체적인 법안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