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권 역사상 이런 혼전은 없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이 자산 30조원 안팎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고,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규모에서는 아직 뒤쳐지지만 기업은행도 국책은행의 한계를 딛고 영업력을 강화하며 '빅4'를 바짝 위협하고 있다. 적어도 수년 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은행들의 혈투가 치열하게 전개될 공산이 크다.
은행장들도 향후 펼쳐질 은행권 전쟁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저마다 강한 전투 의욕을 불사르며 '1등 은행'을 내세우는 것도 절대 밀릴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아시아 금융을 선도하는 글로벌 은행'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한다. 그가 강조하는 건 규모의 경쟁력보다 질적 경쟁력이다. 민 행장은 "비이자 부문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수익구조 다변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고객의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 때 은행 예금 외에도 펀드, 방카슈랑스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구성해 고객 가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에게 올해의 의미는 각별하다. 은행이 설립된 게 1982년이니 한 세대(30년)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대를 시작하는 매우 뜻 깊은 해다. 게다가 서 행장은 올해 연임을 확정하고 2015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의욕이 충만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무리한 목표를 내세우진 않는다. 외려 이익 극대화보다 사회적 책임, 동반 상생을 강조하는 최근 글로벌 경영 흐름에 주목한다. 규모에 집착하는 것보다 경영진 내분 사태로 훼손된 '신한 웨이'를 재구축하는 것이 리딩뱅크로 거듭나는 지름길이라 여긴다. 그가 4월 창립기념식에서 ▦신한문화 재정립 ▦고객ㆍ영업 재구축 ▦사회적 역할 재성찰 등을 내세운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고객의 중요성,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최고경영자(CEO)는 많다. 그게 정답이라는 걸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우 우리은행장처럼 몸소 이를 실천하는 CEO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일과는 몹시 분주하다. 오전에 서울 본점에서 회의를 하고 오후엔 지방에서 거래처 순방을 하거나, 주중엔 서울에서 업무를 보고 주말엔 지방을 돌아보는 식이다. 작년 취임 후 그가 방문한 업체만 100곳을 넘는다. 그가 올해 초 워크아웃을 졸업한 팬택의 기업문화를 배우겠다고 직접 팬택 본사를 찾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부터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윤용로 외환은행장과 손 잡고 시너지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경쟁은행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하나은행의 강점인 소매 영업과 프라이빗뱅킹(PB), 외환은행의 강점인 기업 금융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하는 경우 막강한 파워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 행장은 특히 다른 은행에 비해 우월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PB 부문에서 공격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는 "PB 분야는 브랜드가 매우 중요하며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부분인 만큼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재임 중 이루고 싶은 두 가지 꿈이 있다. 그 첫째가 한 자릿수 금리. 지금껏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금리 인하를 선도한 데 이어 임기 내 금리를 10% 미만으로 떨어뜨리겠다는 각오다.
또 하나는 행복한 직장 만들기. ▦근무시간 정상화 ▦어린이집 개원 ▦각종 포상제도 마련 등이 그의 이런 신념에서 비롯됐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 최초의 자행 출신 은행장으로서 직원들에게 박수를 받고 떠나는 은행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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