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빚, 실업 등으로 인해 위기·취약 상황에 처한 가구는 국내 총 1,733만9,000가구 중 1,000만7,7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6일 '한국가족의 위기성 및 취약성과 정책과제'에서 발표한 전국 표본 7,000가구에 대한 복지패널조사(2009년) 결과를 2010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적용해 계산한 결과이다.
'가구원의 건강'으로 위기를 맞은 가구가 400만1,000가구로 가장 많고, '부채ㆍ카드 빚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가구도 386만6,6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원의 취업 및 실업'(82만1,900가구)과 '자녀 교육 혹은 행동'(53만5,800가구) 때문에 위기에 처한 가구도 130만 가구가 넘었다.
하지만 조사된 9가지 위기요인이 가족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기성과 취약성을 포함한 것이 아니어서 김 연구위원은 약 19만명이 추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 소방방재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으로 위기를 맞은 가족이 11만4,284명, 가족원이 질병 외 사고사 자살 타살로 사망한 가족이 3만2,647명(2010년)이나 되고, 화재로 재난을 겪은 가족도 4만1,863명(2010년)이다.
하지만 위기·취약가구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은 우리 정부의 지원정책은 대상을 극히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시행하는 '가족보듬사업'은 성폭력 학교폭력 자살 등의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것이어서 이혼 사별 실직 가정폭력 알코올중독에 의한 피해자는 제외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긴급지원사업'은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긴급히 필요한 생계비 등을 지원, 소득 외 다른 요인으로 발생하는 가족 위기에는 대응하지 못한다.
김 연구위원은 "위기가족의 발견부터 진단, 개입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서 각 시군구에 '위기가족 통합관리 태스크포스팀'(가칭)을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사회-지방자치단체-중앙정부로 연결되는 체계를 구축, 위기가족을 통합적으로 관리, 지원하자는 것이다. 또 전국 단일 전화번호인 '위기가족 핫라인'을 설치해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사건ㆍ사고의 피해 가족들에게는 한시적인 생계비 지원, 가사도우 및 집안 수습 도우미 파견, 심리상담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호주에서는 가정폭력, 자연재해, 가족원의 수감 혹은 망명으로 정서적인 위기에 처한 가족에게 위기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이미 해체된 가정을 위한 재결합 프로그램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 가족의 위기성 및 취약성 증가는 해당가족의 고통 외에도 국가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며 "취약 가족의 특성과 취약 요인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서에서 강조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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