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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깎아 볼까'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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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깎아 볼까'가 어때서

입력
2012.06.0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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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닐 때 정년을 곧 앞두신 미술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었다. 아무리 머리 좋고 재능 있는 여학생이라도 고등학교 올라가면 남학생들 못 따라간다고. 수리 능력이 떨어지니 지각 능력이 부족하니 틀니에 우물우물 새어나가는 그 작은 목소리로 교과서에 충실치 아니한 말씀만 해대시니 그때 내가 체득한 학습은 반발심이 다였을 터.

고등학생이 된 후 쇼트에서 단발에서 묶이는 길이까지 비교적 자율적인 범위 안에서 '누가 보아도 단정히'라는 시적인 카테고리 안에 우리들은 잘도 묶여버렸다. 개성이라야 머리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으니 친구들의 지갑 안에 단골 미용실의 쿠폰만큼은 한두 장씩 꼭 꽂혀 있고는 했다지 아마.

엄마 따라 동네 미용실에서 일자 단발을 고수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자율학습 시간에 맞을 각오로 시내까지 나가 누구 선생님을 찾으며 어떤 요구 속에 바빴던 친구들. 비교적 전자에 속했던 나는 어느 날 토요일 오후 친구 따라 무슨 미용실 체인점에 들렀다.

우리처럼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헤어디자이너들이 신기해서 그네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보는데 찰리, 애니, 세라, 도로시… 왜 하나같이 다 영어였을까. 그로부터 20년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용사는 물론이고 대다수 미용 체인점의 간판이 영문이니 언제쯤 기발한 우리말이 미용 시장을 개편하려나. 우연히 '까까보까'라는 미용실을 지나가다 직업병이 도져 이런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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