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흥행작 에서 1988년 가수왕 최곤(박중훈 분)이 대마초사건으로 흘러간 곳은 미사리 카페촌이다. 술에 절은 목소리로 불륜 커플을 상대로 노래하는 퇴락한 가수 신세다. MBC 에 나와 인기몰이를 한 로커 박완규도 한때 생계를 잇기 위해 미사리를 전전했다. 박완규는 영화 속의 최곤이 그랬던 것처럼 노래하다 마이크를 집어 던지고 돈 주고 노래 해보라는 손님하고 싸운 적도 있다고 한다. 실의에 젖어있던 그를 끄집어낸 게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고.
■ 신세대 댄스 가수들에게 밀려나 TV에서 사라진 왕년의 스타들은 미사리 카페촌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7080세대들이 그 시절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몰려들었다. 때마침 가요계에 립싱크가 대거 도입되면서 라이브에 목마른 젊은이들까지 가세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전성기에는 50여 곳이 성업해 불야성을 이뤘다. 카페 이름 앞에는 그 집 메인 가수의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이종환의 쉘부르' '이치현의 싼타니'를 비롯, 최진희와 인순이의 간판을 건 '발렌타인', '벤허'(최성수) '록시'(송창식) '열애'(윤시내) '바고'(심수봉) '아테네'(김종서) '엉클톰'(김종서) 등….
■ 하지만 업소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너도나도 인기가수 영입에 나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박완규는 한달 내내 노래해 80만원을 받았지만 1억원을 버는 가수도 생겼다. 자연스레 요금이 올라 3만원짜리 커피도 등장했다. 게다가 경기 의왕시 백운호수와 시흥시 물왕리 등지에도 카페촌이 속속 들어섰다.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문닫는 가게가 속출했다.
■ 그나마 몇 곳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던 미사리 카페촌 주변이 미사보금자리지구로 수용돼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개발보상이 끝나 아파트 기반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머지 않아 대규모 쇼핑몰과 지식산업센터, 근린상가 등으로 바뀌게 된다. 개발에 밀려 추억의 공간이 하나 둘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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