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발사 실패 이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북한은 핵실험 임박설에 대해 미국이 대결을 고취하기 위해 퍼트린 것이라고 하면서 당분간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22일 "처음부터 평화적인 과학기술위성발사를 계획했기 때문에 핵실험과 같은 군사적 조치를 예견한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 핵실험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이지만, 대신에 헌법 서문에 김정일의 업적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핵보유국을 명기함으로써 새로운 불씨를 제공했다.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 어떤 나라도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것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국 명기는 헌법 개정의 불가피성 속에 이뤄진 김정일의 업적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김정일 사후 북한은 김정일 시대 3대 혁명유산으로 핵과 인공위성, 새 세기 산업혁명, 민족의 정신력을 꼽았다. 연장선에서 헌법 서문에 김정일의 혁명업적 중의 하나로 핵보유국으로의 전변을 꼽았다.
북한이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이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핵보유를 헌법에까지 명문화했다는 것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한 것은 대내적으론 일종의 자기최면이나 자기 충족적 예언 차원의 주민달래기용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주민들에게 핵보유국의 지위를 각인시켜 체제와 정권 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론 핵보유국으로서의 억지력을 과시하고, 핵을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북미 협상의 지속과 핵문제를 다룰 큰 틀의 평화협상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두 차례 핵실험을 한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핵보유국 명문화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오랜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국정부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경우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핵이 없는 세상 구상'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북한에게 핵보유국의 지위를 부여할 경우 동북아 국가들의 핵개발 경쟁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북한 스스로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핵보유국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우려했던 핵실험의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북한은 김정일에 의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했고, 태양절 행사에서 군사강국을 선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추가 핵실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고 "지역의 낡은 질서를 바꾸어 놓을 통이 큰 평화외교를 설계하고 있다"는 5일 조선신보 보도를 주목해 봐야 한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미국으로서는 핵실험과 같은 '추가적 도발'이 없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대화에 다시 들어설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2·29합의' 이행과 북미 대화의 속개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음을 전한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 등 추가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을 것을 밝히고 북미관계 개선, 한반도 정세안정, 6자 회담 재개 등을 의제로 상정한 북미 고위급회담의 지속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긴장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김일성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은 북한 헌법보다 상위의 '교시'다. 한반도 평화협상이 본격적으로 개시된다면 북한은 헌법 서문의 핵보유국 명문화에 구속 받지 않고 협상에 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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