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의 선전이다. 지난달 17일 개봉해 '맨 인 블랙3'(5월 24일 개봉)와 일일 관객 동원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내 아내의 모든 것'. 어느 정도 흥행은 예상됐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대결 속 흥행 질주는 이변이라는 평가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5일(영화진흥위원회 집계)까지 292만4,822명을 동원하며 300만 문턱을 곧 뛰어넘을 기세다.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카사노바를 몰래 고용하는 한 남편의 소동극을 적절한 유머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잘 표현했다는 분석이 따른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온 민규동(42) 감독은 이번 영화로 가장 큰 대중적 성공을 맛봤다. 5일 오후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민 감독은 "여자들의 판타지를 좀 자극하며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영화"라고 소개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르헨티나 영화 '내 아내의 애인'(2008)에서 얼개를 빌렸다. 카사노바를 시켜 아내를 유혹하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뼈대에 한국적인 상황을 살로 입혔다. 조연에 가깝던 카사노바를 주연급으로 격상시켰고, 결말부를 완전히 달리했다. 민 감독은 "깨알 같은 대사들을 더 많이 쳤다. 부부간의 소통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이야기를 다뤄서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의 판타지를 깨는 영화라 생각했는데 관객들이 영화를 본 뒤 오히려 결혼이 당긴다, 연애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여 놀랍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전통 코미디와는 다른 이야기 구성과 인물이라 관객들이 좋아하나 봐요. 관객들은 어이없는 투구에 타이밍을 뺏긴 타자가 된 듯한가 봐요."
흥행에는 관객의 허를 찌른 캐스팅이 큰 몫을 했다. 무뚝뚝한 아저씨 이미지가 강한 류승룡을 국제적인 카사노바 장성기로 기용해 관객의 웃음과 탄성을 끌어냈다. 민 감독은 "류승룡과 스릴러를 준비하다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싶어 그에게 이 영화 출연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가 뒤따랐다. "카사노바라면 주드 로 등을 떠올리던" 여자 스태프들이 "류승룡은 새카만 얼굴에 수염 나고 머리도 짧아서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민 감독은 "정열적이고 진지한 하비에르 바르뎀 이미지에다 차갑고 이지적인 량차오웨이(梁朝偉) 느낌을 결합해보자고 제안"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관객들은 젖소를 희롱하거나 여자들의 혼을 빼놓는 장성기의 진지하면서도 호들갑스러운 모습에 웃음보를 터트린다. "류승룡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도 잘못하면 장성기가 느끼해 보이고 비호감으로 다가갈 수 있기에 (류승룡 캐스팅은)마치 지뢰밭 위에서 멋진 춤을 추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임수정을 남편이 너무나도 이혼하고 싶은 여인 정인으로 캐스팅한 점도 의외다. 민 감독은 "오드리 헵번도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했다. 헵번과 살아보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일인데 결국 사랑의 본질은 외모가 아니다"고 말했다.
민 감독은 평단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 중 하나로 꼽히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김태용 감독('가족의 탄생' '만추')과 함께 연출하며 1999년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그는 "매번 관객들과 주변의 예상을 벗어난 갈지자 행보를 해온 듯하다"며 "지금까지 만든 영화보다 좀 더 '큰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3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초등학생 시절) 6년 내내 읽은 세대이니 서사적인 영화를 좋아해요. 언젠가는 한국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 시대를 함축한 드라마틱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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