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200일도 남지 않았다. 주요 정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었거나 막바지 후보 경선 열기로 달아올랐을 때인데도 유력 주자들은 아직 출마 선언도 하지 않았다. 전에 비해 정치일정이 많이 늦어진 셈이다.
일정 지연 자체가 걱정스러운 것은 아니다. 과거와 다른 상황이 있고, 유권자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여야 모두 4ㆍ11 총선 뒷정리에 바쁘고, 주요 예상 후보의 공식 출마 선언만 없었을 뿐 여야와 정치권 밖 유력 주자는 이미 뚜렷하다. 일정 지연의 실질 문제인 '졸속 선택', 즉 유권자가 지지 후보 결정에 시간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문제는 없다.
오히려 현재의 일정 지연으로 유력 주자들이 정책과 비전을 다듬을 시간 여유가 생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막상 후보로 확정되면 곧바로 조직 정비와 여론 다지기, 상대 후보와의 '백화점 식 공방'만으로도 눈코 뜰 새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비주자들이 주어진 시간을 진정한 미래 구상에 투입한다는 전제가 달린 얘기다.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 공방으로 힘을 뺄 태세다. '종북' 논란이 '국가관'이나 '색깔' 논쟁으로 번지고, 시대착오적 '출신 성분' 논란도 따른다.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다툼에서도 보듯, 여야는 전ㆍ현 정부의 공과를 둘러싼 정치 공방에 사로잡혀 있다.
과거를 바로 보는 것은 미래를 바로 세우는 데 불가결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의 미래를 떠맡은 정치권이 아니라 학계나 전문가 집단의 몫이다. 사회가 그 평가를 수용하는 데 필요한 긴 시간을 생각하면 핵심 대선 쟁점은 되기 어렵다.
대선 예비주자들이 지금부터 머리를 싸매야 할 미래의 문제는 무엇일까. 오래 전부터 18대 대선의 시대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후보들이 내세울 이미지나 정책이 무엇일지, 유권자들이 후보 선택에서 무엇을 주된 잣대로 삼을지에 대한 얘기다. 한동안 '도덕성'과 '원칙'이 많이 거론되더니 어느새 '민생'과 '복지'로 바뀌었다.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여야 의원들이 앞을 다투어 민생ㆍ복지 관련 법안을 제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또한 '지난 얘기'가 될 공산이 크다. 최근 재계의 조직적 반발로 불붙은 '경제민주화' 논쟁도 마찬가지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았고, '2012 위기설'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돼 온 세계경제 위기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밀려 드는 먹구름에 비추어 '돈 만들 방법'보다는 '돈 쓸 곳'에 치중한 그 동안의 정책 구상은 희망사항의 나열 같고,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 등을 둘러싼 이념ㆍ노선 논쟁은 부질없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5년 전 대선의 키워드는 '경제 살리기'였다. 지금껏 말끔하게 풀리지 않은 'BBK 의혹' 등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이 대통령이 그 적임자라고 보았고, 그런 기대는 크게 어긋나진 않았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한국경제의 활력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비판과 트집이 집중된 '4대강 사업'만 해도 홍수ㆍ가뭄 방지를 위해서나 경기부양을 위해서나 빠뜨리기 어려웠다. 4년 간 약 22조원의 재정지출에 따른 '승수효과'는 부인하기 어렵고, 부동산 경기 침체 등에 미루어 건설업의 경착륙 방지 효과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날로 커지는 기상 변동폭에 비춘 홍수ㆍ가뭄 방지 효과야 말할 것도 없다.
현재의 국내외 상황으로 보아 연말 대선의 키워드 또한 '경제 살리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외화 유동성 등의 위기에 대비하고, 급격한 경기 후퇴를 막고, 미래의 먹거리 마련을 위한 기초투자를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위기 때면 으레 따르는 '구조개혁'이 인건비 절감 일변도로 치달아 일자리 감소를 부른다면 그 동안의 민생ㆍ복지 정책이 다 헛되다.
아쉽게도 아직 유력주자들의 '경제 살리기' 정책은 들을 수 없다. 누구든 대통령이 되겠다면 이 문제부터 고민하고 대책을 만들어 가지고 나오라.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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