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노사가 5일 가(假)합의안을 마련했다. 새노조가 파업을 시작한지 92일만이다. 오늘 노조대의원대회와 내일 노조총회가 이를 수용하면 장기 파업 중인 4개 언론사 중 KBS가 가장 먼저 정상으로 돌아간다. 주목을 끄는 것은 가합의안의 내용이다. 노사 동수 대선공정방송위원회 설치, 탐사보도팀 부활, 대통령 주례 라디오연설 폐지가 핵심이다. 조합원 징계와 인사 문제도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노조는 더 이상 김인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KBS 새노조 파업의 가장 큰 명분과 목표는'방송의 공정성'이었다. 사장 퇴진 요구도 친정부적 인사인 그가 그것을 해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이번 가합의안은 노조가 요구하는 방송의 공정성을 단순히 선언적이 아니라, 구체적 제도와 프로그램 편성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노조가 사장 퇴진 요구만을 고집하면서 석 달 넘게 시청자들을 볼모로 파업을 계속한다는 것은 스스로 정치적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내부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보면 MBC, YTN, 연합뉴스도 마찬가지다. 파업의 명분은 공정성 보장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 방법을 사장의 퇴진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당장 사장 한 사람을 퇴진시키거나 교체한다고 친정부 인사, 낙하산 인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KBS 노사의 가합의안이 이들의 방송파업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대선이 6개월 남았다. 언제까지 방송이 이렇게 자기역할과 책임을 포기하고 있을 건가. 장기파업에 따른 내부조직의 붕괴와 노조원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질도 도덕성도 없는 사장까지 눈감고 넘어가라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 사장 인사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된 만큼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여야 모두 하루라도 빨리 국회를 열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와 사장선임방식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낙하산 논란과 파업의 악순환이 정파적 차원에서 다뤄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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