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놀이터 혹은 댄스 교습소, 그것도 아니면 공연장 같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그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와 그 앞에 의자를 놓고 바라보는 사람들. 무용수가 자리를 비운 곳에선 관객이 주인공이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겠다며 모여들고, 한 남성은 초록빛의 좁다란 복도를 지나와선 '휴' 한숨을 내쉰다. 한쪽에선 성악가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경기 과천시 광명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일 개막한 'MOVE: 1960년대 이후의 미술과 무용'전에선 이처럼 다채롭고 기이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195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미술과 무용 사이에 이뤄진 상호 작용을 조명한 전시로 시대별 주요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2010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의 기획 전시로 인기를 끌며 지난해 독일에서 순회 전시했다. 한국 전시는 8월 12일까지 이어진다.
관객을 적극적으로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예술계의 노력은 1960년대에 시작됐다. 미국의 반전평화운동과 프랑스의 6ㆍ8혁명 등 자유의식이 솟구치던 이 시기의 분위기를 예술계 또한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그 결과는 미술과 무용의 이종 결합으로 나타난다.
말없는 예술의 결합으로 한층 전위적이지 않을까 싶지만 어떤 제약도 없는 이곳에서 관객들은 몸의 움직임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다. 건축물이 사람의 움직임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하는 파블로 브론스타인은 이번 전시를 위해 초록과 빨강으로 채색된 탑과 같은 문을 제작했다. 그는 각 나라의 문화적 상징물인 문 앞에서 우아한 발레를 추는 퍼포먼스를 진행해왔는데, 이번 작품은 한국의 건축물 사진을 보고 제작한 문이라고 한다. 문 주위에서 남자 무용수는 우아한 몸짓을 보여주는데, 때때로 '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아치형식의 건축물인가!'라며 찬사를 보내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여러 벌의 티셔츠와 바지가 걸린 빨래 건조대 형태의 설치미술 '숲의 마루'도 눈길을 끈다. 일상의 물건을 이용해 즉흥적이고 일상적인 움직임을 실험해 온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의 작품이다. 이곳에선 두 명의 여자 무용수가 마치 빨래가 된 듯, 걸린 옷을 입고 벗는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벌인다.
관객은 두 개의 방을 드나들며 자신과 상대의 모습을 관찰하거나 관찰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균형을 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의 긴장감과 불안감은 '녹색빛의 복도'로 느껴보면 된다. 21명 작가의 35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온전히 관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다리가 아플 땐 '앉아서 퍼포먼스를 보시오', '잠시 명상에 잠겨보라' 등의 지시문이 적힌 라 리보의 의자 설치물에 앉으면 된다.
전시장 곳곳엔 인터랙티브 디지털 아카이브도 설치되어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어져온 퍼포먼스, 해프닝 작업의 기록 18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02)2188-600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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