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만 섬이 있는 건 아닙니다. 육지에도 있어요. 한센마을이 그런 곳입니다."
많이 개선되긴 했어도 아직까지도 차별 속에 살고 있는 한센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처음 만들어진다. 이들에 씌워진 오해와 편견을 바로 잡자는 취지다. 스물 아홉 살의 박명순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박 감독은 6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영화를 통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겠다"며"이 영화가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깨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센병 환자들을 다룬 영화는 더러 있었다. '문둥이'(서정주), '보리피리'(한하운) 등의 시와 소설 소재로 다뤄질 만큼 흔했던 질병이었던 탓이지만 모두 한센인들에게 족쇄 같은 '주홍글자'를 떼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감독은 "상처와 한 등 과거사를 보여주는데 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도 그들의 과거를 피해갈 순 없겠지요. 다만 오늘의 삶과 일반인들과도 다르지 않는 그들의 삶을 담아낼 겁니다." 누구라도 한센인 만의 공간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영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그래서일까. 크랭크인 전이지만 이미'국내 최초 한센마을 소재 영화'라는 타이틀을 걸어 놓았다. 경기도가 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같은 소속 영화사의 김준호(33) 감독이 박 감독을 돕는다. 공동 감독 체제인 것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 기초 자료를 모으던 박 감독은 한센인에 대한 자신의 편견에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전남 고흥 끄트머리에 있는 소록도에만 있는 줄 알았던 한센병 환자들이 전국 100곳 가까운 정착촌에 1만명이 넘더라고요. 전염병도 아니고, 불치병도 아니지만 막연하게 벽을 쌓고 살고 있는 겁니다."
그의 무지 탓으로만 돌렸더라면 영화로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얘기를 주변에 하자 모든 사람들이 '그래?'를 연발했죠."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무관심이 한센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초래했고, 이게 한센인 마을을 섬 아닌 섬으로 만들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면 해결책은 의외로 손쉽게 나오겠으나, 박 감독은 "그건 어디까지나 '가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며 "앞으로의 작업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을 고립시키고 그 병을'천형'(天刑)으로 만든 것도 결국에 바깥 세상의 우리들인데, 이제 와서 우리가 이런다고 해서 그들이 마음의 문을 얼마나 열까요." 고심 끝에 한 두개 한센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살면서 일상을 렌즈에 담기로 했다. 8개월 된 아들이 있는 그는 아내에게 이를 선언했고, 1년 가까운 '장기 외박' 허락을 흔쾌히 받아냈다.
박 감독은 영화 촬영하면서 질문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선 '어떻게 이 마을에 오셨어요?', '아들은 어떻게 됐어요?' 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런 단편적이고 직접적인 질문에 딸려 나오는 답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 질문 자체가 과거의 기억을 들출 수밖에 없는 만큼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그는 깊이 있는 삶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함께 거주하는 동안 한센마을 사람들에게 미디어교육을 고려하고 있다. 직업 촬영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실무 교육이다."아무리 아픈 과거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마음엔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들의 이런 갈증을 채우고 바깥 세상 사람들의 무지도 깨우치는 기록이 될 겁니다." 영화는 1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내년 9월 열릴 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