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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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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8>

입력
2012.06.0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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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시키지 않았어도 점원 아이가 바구니 하나를 좌중이 둘러앉은 방 가운데 놓았고, 손님들은 저마다 주머니를 열어 엽전 한두 푼씩을 던져 넣었다. 다시 아이가 문 앞으로 나아가 바구니를 내밀자 그들도 엽전을 던졌다.

조상 왔던 장끼란 놈, 썩 나서며 하는 말이, 이내 몸 한거한 지 삼 년이나 되었으되 마땅한 혼처 없더니, 오늘 그대 과부되자 내 조상 와서 천정배필을 천우신조 하였으니 우리들이 짝을 지어 유자생녀하고 남혼여가 시켜서 백년해로하리로다. 까투리 하는 말이, 죽은 낭군 생각하면 개가하기 박절하나, 내 나이를 꼽아보면 불로불소 중늙은이라, 숫맛 알고 살림할 나이로다. 오늘 그대 풍신 보아하니 수절할 맘 전혀 없고 음란지심 발동하네. 허한한 홀아비가 예서제서 통혼하나, 옛말에 이르기를 유유상종이라 하였으니, 까투리가 장끼 신랑 따라감이 의당당한 상사로다. 아모커나 살아보세.

장끼란 놈, 꺽꺽 푸드득하더니 벌써 이성지합 되었거늘, 통혼하던 까마귀, 부엉이, 오리, 무안에 취하여 훨훨 날아갈 제, 각색 소임 다 날아간다. 감정새 호로록, 호반새 주르륵, 방울새 딸랑, 앵무, 공작, 기러기, 왜가리, 황새, 뱁새, 다 돌아가니라.

낭독을 마치자 손님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고는 감탄을 했다.

아니, 오늘 서울 장안에 전기수 하나 새로 났네!

장풍운이나 박업복이와 견주어도 앞뒤 다툼이 만만치 않을 듯하이.

연초전 주인 윤 씨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가지고 엽전이 가득한 바구니를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오늘부터 이 서방 이름은 이신통이여. 날마다 오는 건 무리겠으나 하루걸러 한 번이라도 우리 가게에 들러주면 서로 간에 좋은 일이 되겠구먼.

서일수도 이신통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장군 나면 용마 나고, 문장 나면 명필 난다고, 이제 신통이란 이름까지 얻었으니 한양 초행길의 조짐이 좋구먼.

신통이 바구니의 엽전을 거두어 보니 열세 푼이나 되었는데 관례에 따라 가게 점원 아이에게 세 푼을 떼어주고도 열 푼의 돈이 생겼다. 아침밥 겸한 하룻밤 숙식비가 닷 푼이니 한양에서도 먹고 자고 할 방편이 생긴 셈이었다.

과거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도성 안팎은 가는 곳마다 서로의 어깨를 스칠 만큼 붐비기 시작했다. 이신통이 머물고 있는 봉놋방도 손님이 많이 들어야 칠팔 명이면 족할 방에 열둘이나 묵고 있었다. 하루 숙박과 아침 밥값으로 닷 푼이던 것이 어느새 열 푼으로 올라버렸다. 일하는 중노미 아이가 저녁밥을 먹자마자 다른 말이 나올 수 없도록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사라졌던 터였다. 즉 과거 당일 닷새 전부터 시험이 끝난 뒤 닷새까지 그러니까 열흘 동안은 열 푼으로 올려 받겠다면서, 거시(擧市) 기간에는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신통이 마당으로 쫓아나가 중노미를 찾아 따지니 어느 틈에 나타난 주인이 공손하게 대꾸하였다.

그러기에 오래 묵는 이들은 보통 열흘치 보름치를 미리 냅니다. 거시가 끝난 뒤에는 다시 예전 가격이 될 터이니 그때 다시 계산하시지요. 여기뿐만 아니라 한양 도성 인근의 모든 객점 주막이 같습니다.

이신통이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하며 돌아오자 서일수가 껄껄 웃으며 그를 달래주었다.

온 백성이 양반이 되자는 일이니 너무 성내지 말게나.

아저씨, 거자(擧子)가 서울사람 보다 더 많은 듯합니다.

봉놋방에 찾아든 촌 선비들은 그래도 우리와 견줄 만한 이들이고, 방구깨나 뀌고 밥술이나 먹는 자들은 모두 문안의 그럴듯한 여각이나, 아니면 경주인 집이든가, 저희 친척 집으로든 갔을 걸세.

그러니 과거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한양 사는 사람보다 많기야 하겠나마는 아마 절반은 될걸. 헌데 저 사람들 모두가 이를테면 들러리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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