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유행하던 말이다. 서울에는 두 종류 사람이 산다. 북한산을 오른 사람과 아래에서 쳐다만 본 사람이다. 이렇듯 북한산은 기개와 품격을 기리는 서울시민의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핍진한 도시의 삶에 지친 육신과 찌든 정신에다 맑고 푸른 대기의 축복을 공급하는 영양제였다. 요즘은 북한 땅에 있는 산으로 아는 강남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굳이 북한산일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처럼 누구나 쉬 오를 수 있는 산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 또한 우리처럼 산에 오르기를 즐기는 국민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산을 즐겨 '타는' 사람은 많아도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사람이 적다고 한다. 보다 큰 문제는 산행에 나서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산과 들에 맘껏 뛰놀아야 할 나이에 영어, 수학, 휴대전화, 컴퓨터에 체포되고 학원에 감금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제 어느 틈엔가 산은 일터 잃은 노인들의 쓰린 추억을 추념하는 경로당으로 전락했다. 시쳇말로 세월에 밀려난 '루저'들의 술냄새가 진동한다. 산에서 마주치는 여성도 편치 않다. 진한 화장품냄새에 나무와 풀이 질식할 지경이다. 의상도 전투적이다. 웬만한 산마다 군데군데 시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명시인도, 이름 없는 동네시인도 있다. 수준의 높낮이에 무관하게 모든 시구가 정겹다. 카카오톡에 강간당한 나랏말이 살아있다.
도봉산 입구에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김수영(1921~68) 시비와 이병주(1921~92)문학비다. 68년 6월 15일, 이승에서 마지막 술자리를 나눈 동갑내기였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김수영 <풀>) 비명횡사하기 불과 며칠 전에 남긴 글이 곧바로 자신의 비명(碑銘)이요, 후세인의 가슴에 새겨진 유언이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을 스칠 때' 그들은 산 대신 시내의 주점에서 만났다. 만약 둘이 산에서 만났더라면 통음 끝에 자리를 팽개친 김수영이 질주하는 심야버스에 치지 않았을 텐데… 지척에 이병주의 비가 서 있다. 생전 그의 삶과는 달리 초라하다. 역사는 후세인의 선택적 기억이다. 시비의 위치나 규모도 후세인의 선택이다. 이병주의 그릇을 감안하면 유택(幽宅)이나마 절대고독, 절대궁핍에 찌들었던 친구에게 명당을 양보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북한산과의 만남을 계기로 인생이전과 인생이후로 나눈다. 내가 겪은 모든 굴욕은 내 스스로 사서 당한 굴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좌절, 나의 실패는 오로지 그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배신은 내가 먼저 배신했기 때문이고 애인의 변심도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 것도 북한산상에서이다.' (이병주 <북한산 찬가>) 쉽게 이를 경지는 아니다. 작가의 과장이나 수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자연의 품에 안겨 인생사의 크고 작은 번뇌를 녹여버리고 싶은 범인(凡人)의 작은 소망만은 접을 수 없다. 벌써 10년이다. 마종기의 시집 제목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새들의 꿈에서도 나무냄새가 난다> (2002). 내몰렸든, 버리고 떠났던 두고 온 산하의 기억으로 가꾼 사랑이다. 중년을 넘고서야 궁핍한 삶에 가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연의 순수를 되찾을 여유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녀에게서는 더 이상 나무냄새가 나지 않는다.' 일찍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던 미국 남부문학의 거인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1929)의 명구다.
어디 사람만을 지칭하랴. 탐욕, 물질문명, 권력투쟁, 이 모든 것들이 살육해버린 순수가 아닌가. 피해서 찾는 산이 아니라 즐겨서 찾는 산이라야만 한다. 입시학원에 감금된 중고생, 섹스와 폭력 영화에 중독된 대학생이 제 발로 산과 들을 찾아 나설 날이 오기나 할까. 이젠 영영 글러버린 일은 아닐까. 아, 그리운 순수여, 아, 인간성이여!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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