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1시30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일을 이틀 앞두고 무대, 현수막 설치 등 행사 준비를 하는 관계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입구에서부터 보였다. 길을 따라 10여분쯤 걸어 다다른 묘지는 비교적 한산했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홀로 참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는 외에는 어느 단체가 가져다 놓은 듯한 꽃들과 작은 태극기만이 묘지를 지키고 있었다.
묘지에서 만난 직장인 이영복(52)씨는 "매년 6월이면 국립현충원을 딸 혜리(20)와 찾는다"고 했다. 1973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큰 형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당시 23세였던 형은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 없었고, 가사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자원 입대했다. 이씨는 "제가 10살 때라 전쟁에 나가겠다는 형이 아버지처럼 크게 보였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고작 제 딸 또래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큰아버지의 이야기를 늘 딸에게 했고, 혜리씨도 매년 현충원을 찾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이씨가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딸과 함께 한 이유는 형의 묘가 언젠가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는 "세월이 흘러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죽고 나면 결혼조차 못한 형을 누가 찾겠느냐"며 "내 자식이 그 자리를 대신해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현충원을 방문하는 유가족수는 1955년 현충원 설립(당시 국군묘지) 때와 비교해 급격히 줄고 있다. 세월이 흘러 사망하거나 연로해져 유가족이 직접 묘역을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게 현충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현충원 143만㎡(43만 평)부지에 17만762 위(位)의 호국 영령이 안장돼 있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가족협회는 이 곳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3만여위를 가족이 찾지 않는 무연고 묘지로 추정하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사촌오빠 묘를 찾은 신모(60ㆍ경기 수원)씨는 "가족이 모두 부산에 살다 보니 매년 찾기가 쉽지 않다"며 "1971년 부산항에서 손 흔들며 보냈던 오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자주 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신씨의 사촌오빠도 결혼 전에 입대했던 터라 가족이 영혼결혼식을 올려주기도 했다. 그는 "자식들이라도 있어야 자주 들여다 볼 텐데 이제 나라에서 오빠를 챙겨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고모 묘지를 찾은 남모(91)씨는 "일제시대나 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현충일을 가슴 속으로 알기 어렵다 보니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것도 남의 일 로 여기는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현충원 관계자는 "자매결연 한 기업, 군부대, 각종 단체들이 묘역 정리나 헌화를 하도록 장려하고 있어 올해 말까지 300만명이 현충원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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