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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野 대선주자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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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野 대선주자들의 침묵

입력
2012.06.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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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가 당수(黨首)로 활약하던 때도 이러진 않았다. 지역주의에 기댄 후진적 정치 시절이라고 폄하할지 몰라도 그들은 항상 크고 작은 세상사에 분명한 좌표를 제시했었다. 조금 왼쪽이거나 조금 오른쪽이든 간에 서로 입장 차는 있었지만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국민 심판을 기다렸다.

이들의 말이 비록 직설화법은 아니었더라도 군중은 함의를 읽었다. 그리고는 뜻이 맞는 지도자를 따랐다. 유력 주자들의 지지층 형성은 이런 식으로 이뤄졌고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해졌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분들이 무척이나 과묵해진 것 같다. 모든 언론이 한 달 가량 집중 보도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부분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서 그렇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의원의 진퇴 문제다.

특정 사안을 나라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귀퉁이 사안으로 치부하기에는 국민적 관심도 면에서 심각성은 자못 크다.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자진 사퇴 권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민주통합당도 검토해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두 의원의 사퇴가 옳다"고 선을 그었고 장외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마저 "북한에 대해 인권과 평화의 잣대를 다르게 적용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두 의원을 에둘러 비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제1야당인 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지사, 정세균 정동영 고문 등은 뚜렷한 말이 없다. 침묵이 전략이라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국민적 의견이 갈리는 문제에 모든 이를 만족시킬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각자 소신에 따라 두 의원에 대한 지지를 천명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진 사퇴를 권유하거나 제명 찬성 쪽에 설 수도 있다. 이 사안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무지한 것이고, 있는데 밝히지 않는다면 비겁하다.

만일 어느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눈치를 보다가 판이 결정된 뒤 슬쩍 편승하려 한다고 치자. 그런 구태한 모습을 보자고 절반의 국민이 야권을 지지하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두 의원의 제명이나 사퇴를 묻는 질문에 찬성 쪽이 조금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무래도 분단 국가인 현실을 감안해 진보 진영이 북한이란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대중적 목소리에 가까운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입을 닫고 있다. 두 의원의 사퇴를 주장했다가 승리의 요건 중 하나인 야권연대가 깨질까 걱정되고, 옹호했다가는 종북 논쟁에 휘말릴까 우려돼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엄존하는 현상을 애써 외면하거나 도외시하고 있으니 국민 답답증은 더욱 커져간다.

이 같은 '무소신 몸 사리기'에서 나온 결과는 특정 야권 주자에 대한 절대적 확신층이 엷다는 점으로 이어진다. 당당한 제 목소리 없이 비(非)새누리당, 반(反)여당 정서에만 기대려다 보니 야권 주자 대다수가 '노사모'나 '박사모'같은 마니아층을 갖기 어려운, 그저 특징을 찾기 힘든 여러 주자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야권 주자들의 정치적 나약함이 지금의 수세적인 야권 상황을 가속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참고할 만한 과거 사례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15대, 16대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권영길 후보가 독자적으로 출마한 상황에서 대선을 치러 당선됐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왼쪽의 2~3% 표를 포기하는 대신 중원의 15~20% 표를 얻기 위해 힘든 길을 걸었다. 그래서 성공했다.

훌륭한 지도자는 올바른 방향으로 군중을 이끈다. 군중이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면 멈춰 세워야 하고 맞으면 더욱 북돋워야 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부정 경선 파문이 불거진 뒤 대부분의 야권 대선주자들은 한 달 째 결단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훌륭한 지도자 상(像)과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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