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이 2년 전 1차 수사 때와 같이 실체 규명을 하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론에 떠밀리듯 마지못해 재수사를 시작한 뒤 중간중간 수사 의지를 의심케 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인 만큼 '예정된 결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3월16일 재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사즉생의 각오로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3월3일 장진수(39)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청와대 개입설을 폭로한 지 2주일이 지나서야 재수사에 나선 데 대한 불신이 높았고, 불법사찰 당시 청와대 민정라인에 있었던 권재진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검찰 고위 인사들이 수사의 영향권 내에 있어 수사 의지를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석 달 간의 수사 성과를 보면 이런 불신은 기우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이영호(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최종석(42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행정관을 기소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이미 이 전 비서관이 스스로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몸통'임을 자처했던 만큼 검찰의 단독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비선 보고라인의 '윗선'으로 보고 조사했지만, 이 역시 그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이미 구속기소된 후의 일이다. 정정길,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사는 서면조사로 끝내려는 눈치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수사 과정도 의심쩍은 대목이 많았다. 재수사 착수 시점부터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추가 불법사찰 자료를 가지고 있고, 윗선 규명의 키를 쥐고 있다"는 첩보와 진술이 있었지만 검찰은 4월6일에야 진 전 과장에게 소환 통보를 했고, 응하지 않자 1주일이 지나서야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다른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의 검찰의 발 빠른 선제공격은 찾아볼 수 없었고, 도리어 진실 뒤에 숨어있는 상대에게 사건을 은폐하고 대응할 시간만 제공해 줬다는 의심을 샀다. 2년 전 수사에서 구속됐던 진 전 과장이 구치소에서 "민정수석실 관련자를 수갑 채워서 교도소에 데려오겠다. 수석과 비서관을 손보겠다"고 발언한 사실까지 공개되면서 이런 의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ㆍ현직 검찰 간부가 등장하는 사건 구조상 애당초 검찰에 원칙적 수사를 기대한 것은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 당시 민정수석실 최고 책임자였던 권재진 전 수석은 현재 법무부장관으로, 김진모 전 민정비서관은 서울고검 검사(차장검사급)로 복귀해 있다. 검찰은 김 전 비서관에 대해서는 몇 시간 만에 조사를 끝내 면죄부를 줬고, 권 장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2년 전 수사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총리실 압수수색 정보 사전 유출 및 청와대 수사 외압 의혹을 이런 식의 소극적 수사로 확인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에서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이 다시 추진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국조와 특검이 진실 규명의 특효약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의 재수사가 도리어 배후세력에게는 예방주사가 됐을 것"이라며 "특검이 소용 있겠느냐"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