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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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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7>

입력
2012.06.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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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이름 한번 야무지고 기묘허다!

좌중이 제각기 감탄하며 떠들었다. 이신은 졸지에 신통이가 되어 『장끼전』의 책장을 여는데,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들뜨고 신이 나서 절로 말이 나온다.

자아, 그럼 이신통이가 『장끼전』 한 대목을 읽어 보는데, 꿩의 화상을 볼작시면 의관은 오색이요 별호는 화충이라. 산짐승 들짐승의 천성으로 울울창창 숲속에서 낙락장송 정자 삼고, 상하평전 들 가운데 퍼진 곡식 주워먹어 임자 없는 몸이로다!

수꿩 장끼와 암꿩 까투리 부부가 어느 맑은 날 나들이를 나왔다가, 콩을 발견하고 먹는다 거니 안 된다 거니 입씨름하는 것이 첫 장면이었다.

평생 숨은 자취 좋은 경치 보려 하고 백운상봉에 허위허위 올라가니, 몸 가벼운 보라매는 예서 떨렁, 제서 떨렁, 몽치 든 몰이꾼은 예서 위여, 제서 위여, 냄새 잘 맡는 사냥개는 이리 웡웡, 저리 웡웡, 억새 포기 떡갈잎을 뒤적뒤적 찾아드니 살아날 길 바이없네. 사잇길로 가자 하니 부지기여 포수들이 총을 메고 둘러섰네. 엄동설한 주린 몸이 어데로 가잔 말가. 종일 청산 더운 볕에 상하 평전 너른 들에 콩낱 혹시 있겠으니 주우러 가자 세라.

이때에 장끼 치장 볼작시면, 당홍 대단에 곁마기에 초록 궁초 깃을 달아 백능 동정 시쳐 입고 주먹벼슬 옥관자에 열두 장목 만신풍채 장부 기상 좋을시고.

까투리 치장 볼작시면 잔누비, 속저고리 폭폭이 잘게 누벼 상하의복 갖추 입고, 아홉 아들 열두 딸년 앞세우고 어서 가자, 바삐 가자, 평원광야 너른 들에 줄줄이 퍼져가며 널랑 저 골 줍고, 우릴랑 이 골 줍자, 알알이 두태를 주을세면 사람의 공양은 부러워 무엇하리.

천생만물 제마다 녹이 있으니 일 포식도 재수라고 점점 주워들어갈 제, 난데없는 붉은 콩 한 낱 덩그렇게 놓였거늘 장끼란 놈 하는 말이, 어화 그 콩 소담하다. 하늘이 주신 복을 내 어이 마다하리. 내 복이니 먹어 보자. 까투리 하는 말이, 아직 그 콩 먹지 마소. 설상에 인적은 수상한 자취로다. 다시금 살펴보니 입으로 훌훌 불고 비로 싹싹 쓴 자취 괴이하매, 제발 덕분 그 콩 먹지 마소. 장끼란 놈 하는 말, 네 말이 미련하다. 이때를 의논컨대 동지섣달 설한이라, 첩첩이 쌓인 눈이 곳곳에 덮였으니, 천산에 나는 새 그쳐 있고, 만경에 발길이 막혔거늘, 사람 자취 있을쏘냐.

까투리와 장끼 부부의 간밤 꿈 얘기가 나오면서 다툼이 계속되다가 기어이 수꿩은 콩을 집어먹기로 작심을 끝내는데 다음과 같이 이신통의 낭독이 계속되었다.

장끼란 놈 거동 보소, 콩 먹으러 들어갈 제, 열두 장목 펼쳐 들고 꾸벅꾸벅 고개 조아 조촘조촘 들어가서 반달 같은 혀뿌리로 들입다 콱 찍으니, 두 고패 둥글어지며 머리 위에 치는 소리, 박랑사중(博浪沙中)에 저격시황(狙擊始皇)하다가 버금 수레 마치는 듯 와지끈 뚝딱 푸드득, 변통 없이 치었구나. 까투리 하는 말이, 저런 광경 당할 줄 몰랐던가, 남자라고 여자의 말 잘 들어도 패가하고, 기집의 말 안 들어도 망신하네.

까투리 거동 볼작시면, 상하평전 자갈밭에 자락머리 풀어놓고 당굴당굴 궁글면서 가슴 치고 일어앉아 잔디풀을 쥐어뜯어 애통하며 두 발로 땅땅 구르면서 붕성지통 극진하니, 아홉 아들 열두 딸과 친구 벗님네들도 불쌍타 의논하며 조문 애곡하니 가련 공산 낙목천에 울음소리뿐이로다.

솔개, 갈가마귀, 부엉이, 외기러기, 물오리, 호반새 등등이 조문을 왔다가 차례로 과부 까투리를 후리려 하지만 드디어는 어디선가 날아온 장끼에게 개가하기로 결정이 난다. 잠시 숨 돌리는 참이 되어 담배 한 죽씩 태우고는 주인이 내온 차를 한 잔씩 마시는데 어느 틈에 가게 앞에는 지나던 사람들이 둘러서서 언패 낭독을 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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