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시작된 공포의 불길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넘어 미국, 중국, 브라질 등으로 무차별 번지고 있다. 이제 그 불길을 잡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통화정책 카드를 쥔 각국의 중앙은행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에 주요국 중앙은행 이벤트가 집중돼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도 깊다.
당장 위기의 진원지 유럽중앙은행(ECB)의 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가 주목된다. 지금 시장은 ECB에 ▦금리 인하 ▦3차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국채 매입 재개 등을 기대하지만, 현재로선 그 어느 것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위기 상황에서도 물가 유지가 통화정책의 최우선임을 거듭 강조해왔다. 때문에 국제금융센터는 4일 보고서에서 “시장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ECB가 6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만약 ECB가 행동에 나선다면 그리스 총선 결과가 나오는 6월 17일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그리스 총선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LTRO 확대나 금리 인하 등의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역내 위기국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7일 통화정책회의를 여는 영국 영란은행(BOE) 역시 경기 위축과 물가 상승 우려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 처지다.
같은 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의장이 상ㆍ하원 합동경제위원회 연설에서 시장이 고대해 온 3차 양적완화(QE3) 가능성을 언급할 지도 관심사다. 미국 경제지표마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QE3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 로이터 통신이 15개 대형 금융회사 딜러를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QE3 가능성이 50%로 조사됐을 정도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이 한 두 달 지표만 보고 QE3 카드를 덜컥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미 돈이 넘쳐나는데 추가로 돈을 푼다고 민간 부문으로 돈이 스며들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라는 진단이다. 대신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6월 말 종료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단기국채를 팔고 장기국채를 사들여 장기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 경기 부양)의 후속책 정도겠지만,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둔화 조짐이 확연한 중국도 지급준비율이나 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도 유럽과 미국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그나마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정책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경제참고보(經濟參考報)도 이날 “경제 하강 압력이 커지는 속에서 물가상승률이 3%에 머물고 있는 만큼 예ㆍ대 금리 중 대출금리만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8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선 12개월째 금리 동결이 확실시된다. 다만, 지난달 “금리 인하 논의는 없었다”는 김중수 총재가 이번에는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내놓을 지가 관심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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