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소프트웨어 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된 최모 수사관의 뇌물 범죄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검찰 수사관이 저질렀다고는 믿기 힘든 수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최씨는 단속에 걸린 업체 대표에게 먼저 접근, 복제품을 정품처럼 둔갑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쳐주고 돈을 챙겼다. 그는 지난해 10월17일 전기변환장치 제조ㆍ판매업체인 S사에 대해 복제 소프트웨어 단속을 벌여 오토캐드(AutoCad) 등 118개 제품에서 2억8,000만원 상당의 불법 복제품을 적발했다. 최씨는 며칠 후 이 회사 대표 K씨를 서울남부지법 주차장에서 만나 "소프트웨어 일부를 적발 대상에서 빼 줄 테니 1,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적발 품목을 줄이는 방법을 K씨에게 알려줬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구할 수 있는 적발 소프트웨어 정품의 표지와 제품고유번호를 CD에 붙인 후 이를 복사해 소명자료만 제출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최씨는 이후 정품으로 조작된 제품의 가격만큼 지적재산권 침해 금액에서 공제한 후 허위 수사보고서를 만들어 수사기록에 첨부했다. 담당 검사에게는 "소명자료를 제출받아 보니 정품 보유 내역이 추가로 확인돼 공제했다"고 속였다.
이 같은 최씨의 조작으로 K씨의 지적재산권 침해 금액은 3,400만원으로 대폭 줄었고, 범칙금 액수도 크게 감소했다. 최씨는 지난해 11월1일 오후9시 서울남부지법 주차장에서 K씨를 다시 만나 1,000만원을 건네받았다.
이 같은 금품수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최씨는 다양한 명목을 내세웠다. 지난해 11월 S사 대표 김모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려면 법무법인이나 문화체육관광부에 돈을 줘야 한다"며 1,900만원을 받아 챙긴 후 김씨의 불법 복제품 해당 금액을 20분의1로 줄여줬다. 또 비슷한 시기에 G사 대표 박모씨에게 전화해 "사설 브로커가 변호사 사무실, 소프트웨어 총판, 수사관들과 조율해 적발 수량을 줄여줄 수 있는데 비용이 필요하다"고 요구, 검찰청 부근 커피숍에서 1,200만원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최씨가 챙긴 돈은 지난해 5월부터 7개월 동안 11차례에 걸쳐 1억2,620만원에 달했다. 지적재산권 침해 금액이 15억원이나 됐던 한 업체로부터는 수사기록상 최종 금액을 1억원대로 줄여주는 대가로 한번에 6,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최씨는 업체들이 이 같은 자신의 수법에 순순히 돈을 건네자 공제금액의 대략 5%를 요구하던 뇌물 액수를 지난달에는 20%까지 올려 요구하다 업체 대표의 진정으로 꼬리가 밟혔다.
검찰은 최씨의 비리 행각이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계속됐는데도 진정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검찰 수사관과 함께 불법 소프트웨어를 단속한 경험이 있다는 한 경찰 관계자는 "제대로 수사하면 검찰 조직이 흔들릴 만한 사안이지만 그게 되겠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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