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40㎞ 떨어진 버지니아주의 웨스트필즈 매리어트 호텔 앞은 시위대의 고성과 야유로 종일 시끄러웠다. 시위대 수백명이 호텔에서 차량이 들고 날 때마다 "미국에서 떠나라" "배신자" 등의 험담을 퍼부었다. 특이한 점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국 보수주의 유권자운동 단체 티파티 회원들과 월가 점령 시위대가 뒤섞여 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이들이 공공의 적으로 삼은 대상은 빌더버그 회의 참석자들이다. 호텔에서는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빌더버그 연례회의가 열렸다. 매년 미국과 유럽의 정ㆍ재계 유력 인사 수십명이 모여 핵, 테러, 경제 등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모임 이름은 첫 회의가 1954년 네덜란드 빌더버그에서 열린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회의 내용과 참석자 면면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올해도 빌더버그 웹사이트에는 "외교 현안과 국제경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고 적혀 있을 뿐 세부 일정은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 세계 정치ㆍ경제를 주무르는 숨은 실세그룹이란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유럽연합(EU) 창설과 유로화 구상이 이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얘기도 있고, 참석자들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사실상 결정한다는 설도 있다. 공교롭게도 91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빌 클린턴과 93년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의원은 회의에 참석해 얼굴을 알린 뒤 최고 지도자에 등극했다.
시위대는 거물 몇 명이 자신들의 운명을 쥐락펴락한다는 점에 분노한다. 한 시위 참가자는 "월가 시위대나 티파티나 표현 방식이 다를 뿐 '공존의 사회'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며 "진짜 범죄자는 돈과 권력에 기대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 저들"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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