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1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제7회 아시아태평양농아인경기대회 한국 대 이란 농아인축구대표팀의 4강전이 열렸다. 결승전 진출을 앞두고 양 팀 선수들은 치열했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심판 판정마다 감독과 코치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2시간 내내 경기장 밖에서 대기 중이던 국제수화통역 자원봉사자 김태욱(33)씨의 손도 그 때마다 덩달아 바빠졌다.
2일 막을 내린 이 대회에 김씨처럼 국제수화통역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인원은 60여명. 대부분 청각장애인이다. 이들은 시각 능력이 뛰어나 일반인들보다 각종 수화에 능통하다. 본업이 수화통역센터 수화통역사인 김씨도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은 세계농아인연맹청년회(WFDYS) 같은 국제기구나 이런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를 통해 국제 교류를 할 때가 많다"며 "외국 청년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고 전했다. 대회 내내 사이클 전담 국제수화통역을 했던 청각장애인 조은회(38)씨도 결혼식 날짜까지 미루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조씨는 "청각장애인들의 국제 교류는 계속 늘고 있어 화상 채팅을 통해 외국 친구들을 사귀거나 세계 청각장애인들의 권익 신장에 뜻을 모으기도 한다"며 "청각장애인들의 교류가 국내 커뮤니티에 한정돼 있던 것은 옛날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수화는 나라마다 제 각각이다. 그래서 각국의 청각장애인들은 공용 수화인 국제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그래도 소통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인 외국 선수가 건청(건강한 청력)인 한국 심판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최소한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선수가 국제수화로 의사를 표하면 국제수화통역사가 이를 한국수화로 통역하고, 다시 건청인 수화통역사가 이를 한국어로 심판에게 말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청각장애인들의 국제 행사에서 국제수화통역사는 없어선 안 될 핵심 인력인 셈이다.
막중한 임무 탓에 어려움도 많았다. 김씨는 "수화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처럼 작은 동작 하나에 의미가 달라진다"며 "승패가 달린 문제이다 보니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항상 신경 써야 했다"고 했다. 한국어·영어·일본어·국제수화 등 4개 수화를 하는 조씨도 "외국어 배우기를 즐기는데도 경기 규칙이나 전문 용어를 손에 익히기 까다로웠다"고 털어놓았다.
1,500명 선수단의 '귀와 입'이 됐던 이들 덕분에 8박 9일간의 대회는 순탄하게 마무리됐다. 이들은 "12년 만에 어렵게 열린 대회인데 자원봉사자 등 인력이 너무 부족했다"며 "청각장애인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글·사진=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