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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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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6>

입력
2012.06.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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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수가 나중에 들어왔음에도 질세라 끼어들었다.

허허, 담배 맛을 모르시는 말씀이외다. 역시 담배란 남방초요, 남초라면 진안 장수 것을 으뜸으로 칩니다. 투박한 듯하나 깊은 향이 있고 목구멍을 넘어가며 탁 걸리는 맛이 남초의 제맛이지요.

주인이 웃으면서 좌중에 대고 고자질을 한다.

저 사람이 담배 장사요. 장수초를 가져와 내게 주인을 댔는데 지금 자기 물건 안 팔릴까 하여 광을 치는 것이라오.

서초의 부드러움을 칭송하던 이가 서일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수초는 그게 골초 용골대나 피우는 연초라오, 삼등 성천 연초는 잎이 노랗고 얇아서 금비단이라 부르는데 연경 사행에도 가져가는 주요 물목이외다.

진안 장수초는 잎이 두껍고 쪄서 말리면 황토색이 나는 것이 담뱃대에 담아 불을 붙이면 그 연기의 향이 군밤 냄새처럼 풍기지요.

서일수가 그럴듯이 자기 물건 자랑을 했고 길 가던 손님들이 찾아와 자신이 원하는 연초를 저울에 달아서 사갔다. 누군가가 바깥을 기웃거리면서 말했다.

헌데 오늘은 장풍운이 좀 늦네그려.

글쎄 말여, 고뿔 들었나? 저어 첫다리에서 내려오다가 이맘때에는 종각 앞에 가 있을지도 모르지.

여러 말이 설왕설래하니 주인이 한마디로 잘랐다.

장풍운이 평양 갔다네. 벌써 열흘 넘었나. 서도 패거리들과 작당하여 놀러갔으니 추워지기 전에는 안 올게요.

이거 낭팰세. 나는 그 언패고담(諺稗古談) 듣는 재미로 왔건마는.

주인이 뒤편의 탁자장 아래 칸에 쌓아둔 대여섯 권의 책을 들춰보이며 말했다.

방각본 책은 우리 집에도 몇 권 있는데, 누가 읽을 사람이 있어야지요.

그러나 손님들은 시큰둥했고 장 아무개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못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문이야 누군들 못 읽겠소? 알아주는 전기수(傳奇叟)란 목청도 좋아야 하고, 발성이 또렷하여 듣기 편해야 하며, 이야기의 희로애락을 거기 나오는 인물의 느낌과 감정대로 전해주어야 하며, 강약 고저장단이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거라오.

아예 임자가 연희물주를 하여 어디서 하나 구해 오시구려.

좌중에서 제각각 떠드는데 서일수 옆에 잠자코 앉았던 이신이 슬그머니 일어나 무릎걸음으로 주인의 뒤로 돌아가더니 탁자장 아래 칸을 살피는 것이었다.

네, 어떤 책들이 있나 좀 보겠습니다. 여기 『임경업전』이 있고……

그건 일전에 장풍운이가 이 대목, 조 대목 다섯 차례나 끊어서 다 읽어 치웠다네.

한 손님이 일러주었고,

『전우치전』이라……

중얼거리자 또 한 손님이 재빨리 끼어든다.

오래 전에 읽었으나 가물가물하니 다시 읽어도 좋겠네.

『장끼전』이 있는데요?

하니까 주인도 그렇고 여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책장수가 왔기에 두 권을 샀으니 『장끼전』은 새 책이오.

그 뭐신가 『별주부』처럼 짐승 얘기가 재미있겠군.

주인이 서일수를 돌아보고는 마음이 안 놓였는지 이신에게 물었다.

헌데 더러 언패는 읽어보았소?

예, 시골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기로 종종 읽어주었지요.

허 그러신가? 이거 초면에 예가 아니지만 나는 이 집 주인이고 윤 가요, 손님 성명이 어찌 되우?

이신이라 합니다.

보은 산다네요.

곁에서 서일수가 거들었고,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빙긋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 차라리 이신통이라구 허우. 전기수 이름은 듣자 마자 마빡에 알밤 맞은드키 딱! 하고 기억나야 되는 법이여.

신통이, 이신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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