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림자 금융'이 문제였다. 그림자 금융이란 중개기능을 수행하지만 정부의 규제와 보호를 받지 않는 금융을 일컫는 말이다. 금융이 본래 불안정한 까닭에 정부가 일정한 규제ㆍ감독을 통해 불안정성을 통제한다. 그렇다고 모든 금융을 규제ㆍ감독할 수는 없으므로 방치하는 부분이 생기는데, 이러한 부분이 바로 그림자 금융이다. 그런데 그림자 금융은 시장에서 정부 보호 없이 스스로 생존해야 하므로 혁신적 마인드로 중개기능을 수행하게 되고 이것이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증권화가 좋은 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금융 선진국에서 허술한 규제가 금융혁신과 그림자 금융을 발달시켜 시스템 위기를 초래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친 규제가 금융혁신을 억제해 중개기능 발달을 저해했다. 과다 규제 하에서 금융시장의 많은 노력이 규제 일탈에 집중되고 엉성한 법치금융의 틈새를 뚫고 비리와 부정행위가 판을 친다. 저축은행 사태가 비근한 예다.
은행권은 어떤가. 은행은 규제와 보호가 많은 대표적인 제도권 금융이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와 보호는 창의성을 발휘해 중개기능 개발에 집중하는 데 장애요인이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을 선호하는 자금이 은행으로 몰렸는데, 은행은 이를 모기지 대출로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변동금리형 모기지 판매를 통해 대부분 금리위험을 고객에게 전가했다. 국가별로 은행권 변동금리대출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 10%, 영국 62%, 프랑스 13% 등으로 한국의 95%와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은행들이 외환위기 등을 거쳐 이제는 제법 위험관리 능력을 갖췄을 것으로 기대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위험을 고객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보험권과 펀드산업도 고객 서비스 수준이 낮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보험권의 변액보험은 90% 가량을 펀드로 운영함으로써 가입자 위험노출이 크고 수수료를 우선 공제함으로써 고객 수익률이 하락하고 위험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 자산운용업계의 적립식 펀드 계좌수가 지난 수년간 반으로 준 것도 결국은 고객자산 증식보다 자신의 판매수수료 챙기기와 외형 부풀리기에 주력한 영업전략의 문제로 풀이된다.
지금은 금융기관들의 금융중개기능 확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인구 고령화에 대비하고 벤처ㆍ중소기업 지원 방안 마련이 특히 중요해 보인다. 우선 고령화에 접어든 국민들이 자금을 장기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중장기 예금 및 연금 상품 개발, 제공이 필요한데, 다양한 만기의 역모기지 상품 개발이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우려되는 가계부채 문제 해소를 위해서 은행은 커버드 본드와 별개로, 유동화 채권의 신용을 자체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중장기 채권 발행을 고려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벤처 및 중소기업 지원으로 연결시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차세대 성장동력 개발을 지원하고, 내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야 말로 오늘날 한국 금융기관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금융중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제시한 클라우드 펀딩, KONEX, QIB, 복합금융 등 여러 가지 중소기업 지원 대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중개기능을 정부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으며, 금융권 스스로가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직접금융시장 조달 비중이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 은행 등 간접금융의 역할 찾기가 중요하다.
차세대 성장동력 개발 및 내수 진작 등을 위한 자금 공급은 경제성장의 핵심요소일 뿐만 아니라 PB와 자산관리에 쓰일 투자상품 개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만약 모든 개별 금융기관들이 안전 경영을 추구해 이러한 자금 공급을 꺼린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중개기능 작동이 멈추게 되어 경제성장이 어려워지는 구성의 오류가 발생한다. 그 때는 무엇으로 자산관리를 할 수 있겠는가.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