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귀환과 함께 러시아에서 석유 등 자원의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크렘린 자본주의'가 부활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 국영기업이 영국과 러시아의 합작 석유회사 TNK-BP의 영국 측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1일 전했다. 2003년 영국계 석유회사 BP와 러시아 측 파트너 AAR이 50%씩 투자해 설립한 TNK-BP는 하루 200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러시아 3위 석유회사다. BP의 지분은 300억 달러 정도로 평가된다.
로이터통신은 BP 소유 지분의 인수 주체로 국영인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로스네프티를 꼽았다. BP 역시 TNK-BP의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지만 누구에게 팔지는 밝히지 않았다. 석유중개업체 번스타인의 분석가 오스왈드 클린트는 "석유는 외국인의 손에 넘기기에는 전략적으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러시아가 BP 소유 지분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BP 지분의 인수자로 로스네프티와 함께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회사 가즈프롬을 들었다. 신문은 "러시아의 국영기업이 크렘린의 승인 없이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푸틴의 개입을 시사했다.
TNK-BP는 그 동안 러시아 정부의 견제를 받아왔다. 2008년에는 당시 CEO였던 BP 출신의 밥 더들리가 비자 갱신이 거부돼 러시아를 떠났고 지난해에는 러시아 측 파트너 AAR의 대표 미하일 프리드만의 사무실이 경찰에 수색을 당했다.
푸틴이 지난달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외국계 석유회사 지분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자 푸틴 특유의 크렘린 자본주의가 부활하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은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재임 시절 자원에 대한 통제와 고유가를 바탕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고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민영화를 적극 추진했다.
러시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달 22일 푸틴의 최측근 이고리 세친이 로스네프티의 CEO로 임명될 때 예고됐다. 러시아 정계의 '회색 추기경(숨은 실력자)'으로 불리는 세친은 2008년 푸틴이 총리에 취임하면서 내각 요직인 에너지담당 부총리에 기용돼 메드베데프에 맞서 에너지 관련 기업의 민영화를 막은 경력이 있다.
푸틴의 유럽 순방을 수행하고 있는 세친은 TNK-BP의 지분인수와 관련해 1일 "모든 정보를 수집한 후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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