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집하시는 저희 부모님이 서울 암사동 양지마을에서 기른 채소 들여가세요. 아버지는 고혈압이고 어머니는 당뇨인데 이 채소 덕분에 건강해지셨답니다."
"경기도 성남 이우학교 학생들이 농사 수업 시간에 학교 텃밭에서 가꾼 상추를 한 꾸러미 1,000원에 드려요. 쌈 싸먹어도, 샌드위치에 넣어도 맛있습니다."
2일 점심 무렵, 도시 농부들이 직접 기른 상추와 오이를 소리 높여 뽐내는 이곳은 서울 도심 한복판. 광화문 건너 공터인 열린시민광장에 마련된 첫 번째 '서울 농부의 시장'이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쌈지농부, 서울 농부의 시장 운영위원회가 주관한 이 장터는 농촌의 농산물 직거래 장터와 달리 서울 시내와 근교 텃밭을 활용한 도시 농업 농산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특징. 총 48개 부스 중 10개가 도시 농부 몫으로 돌아갔고, 도시 농업에 필요한 모종과 기구를 파는 부스도 마련됐다. 쌈지농부의 김영미 이사는 "농산물 거래를 넘어 도시 농업 문화를 알리고 즐기자는 취지에서 장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처음 장터에 나온 도시 농부들은 활력이 넘쳤다.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중ㆍ고교생 10여 명은 상추를 들고 손님을 찾아 장터를 누비는 전략으로 '완판'을 해냈다. 이들의 학부모들도 직접 구운 유기농 빵과 쿠키를 내놓았다. 세 명의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낸 박광현(50)씨는 "농산물을 직접 길러 팔아보는 경험이 아이들의 진로 탐색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나왔다"고 말했다.
"석유 에너지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친환경 토마토 주스 맛보세요!" 믹서기를 자전거에 연결한 후, 손님이 직접 자전거를 돌려 발생되는 전기로 토마토를 갈도록 하는 판매 전략을 내세운 부스도 눈길을 끌었다. 올 봄부터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마당과 용산구 이촌동 노들텃밭에서 쌈채소와 허브 농사를 시작한 10명의 20~30대 농부모임인 '파릇한 절믄이'의 아이디어다. 이들은 자신의 농산물을 홍대 앞 유기농 카페에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파릇한 절믄이' 일원인 환경운동연합의 나혜란(26)씨는 "도시 농업은 농산물 수송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신선하고 건강한 먹을 거리를 확보하게 하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날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문성희 자연요리연구가의 오미자된장효소비빔밥과 약초맛물로 끓인 오이미역냉국 시식 부스. 최소한의 과정으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를 개발해 온 문 연구가가"자연스러운 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몸에 좋은지 서울 시민들에게 체험하게 하고 싶다"는 뜻에서 재능 기부한 것이다. 문 연구가가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장터에서 제철 야채들을 버무려 담아낸 정성스러운 밥상은 사전 예약한 30명의 시민에게 돌아갔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던 정연숙(78)씨는 "광화문에서 유기농 음식을 먹으니 새롭다"며 "이런 행사가 꾸준히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예술가들이 차린 천으로 된 시장 가방 만들기, 농산물 포장지를 재료로 만든 업사이클 지갑 판매대 등 친환경 워크숍 부스도 장터의 즐거움을 더했다. 우연히 이 곳을 찾은 경기도 일산주민 이수미(35·여) 송정훈(34) 부부는 "좋은 식재료를 적당한 가격에 팔 뿐 아니라 친환경과 관련한 즐길 거리들이 있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장터를 방문해 "서울 농부의 시장을 서울 명소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날 오전10시부터 오후3시까지 마련된 첫 장터에는 4,000명이 다녀갔다. 9일 두 번째 장터에서는 식생활 교육 전문 사회적 기업인 '푸드 포 체인지'의 노민영 대표가 아이들에게 건강한 식생활을 가르치는 재능 기부를 할 예정이다. 장터는 10월 20일까지 모두 20차례 열린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