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화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잠> (문학과지성사 발행)을 냈다. 현재의 경험과 사유를 경쾌하고 발랄한 시로 표현해온 시인은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2009년 윤동주문학상 젊은작가상, 2010년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첫 시집을 낸 여러 시인들이 타자와의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갖지만, 이씨는 역으로 타자와의 공통감각을 주제로 한 시를 다수 발표했다. 전작 시집 <우리들의 진화> (2009)에서 '우리들'이 함께 겪은 경험과 감각을 노래했던 그는 신간에서 '나와 너'의 개별적 감정이 분화되는 풍경을 그린다. 그는 "시를 쓸 때 내 기분과 감정을 다른 사람의 것처럼 떼어내서 만지고 주무른다"고 했다. 우리들의> 차가운>
'너의 이해가 나에게 닿지 못할 때/ 너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나를 감동시킬 때/ 내가 칼을 빼들까/ 꽃을 흔들까// 물의 꿈/ 곡식의 꿈/ 우리의 꿈이 바짝 타오른다'('우리들의 꿈' 부분)
2009년부터 쓴 시 62편이 담긴 이번 시집은 나와 타자의 관계를 사유한 1부, 일상의 풍경을 유쾌하게 풀어 낸 2부, 사랑과 시에 관한 생각을 쓴 3부로 묶였다. 특히 1부는 평범한 언어를 개성적으로 재해석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오렌지 농장 근처에서 실종된 유학생에 대해/ 점거 농성 중인 노동자의 마스크에 대해/ 남편 잃은 베트남 여인에 대해/ 그녀의 사라진 팔십만 원에 대해// 빵과 빵 사이에 끼워 넣을 것이 많았다/ 우리는 입술을 오물거렸으며/ 눈시울을 붉혔으며/ 그리고 잠시 후 한쪽 입술을 실룩거리며 웃었다// (중략) // 그럴 때 내 구멍은 조금 아픈 것 같다/ 그럴 때 네 구멍도 조금 벌어진 것 같다/ 네 구멍은 조금 어두워진 것 같다' ('그물의 미학' 부분)
2부에선 음식을 모티프로 시인의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시 쓰기는) 혀로만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성의껏 동원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이씨는 "맛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이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맛을 느끼는 것은 소통이고, 관습이고, 학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쩌다 김밥에 관한 시를 쓰게 되었다/ 어쩌다 김밥을 먹게 되는 날이 있는 것처럼/ 김밥하면 천국이 떠오르고/ 천 원이나 천오백 원으로 어떻게 김밥을 말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김밥 둘둘 잘도 마는 조선족 아줌마들 월급이나 제대로 주는지' ('김밥에 관한 시' 부분)
'아무도 시는 안 읽어/ 나도 안 읽어'(시 '저것은 국화 이것은?')라고 현실을 진단한 시인이 딱딱하고 난해하다는 현대시의 고정관념을 깨려고 분투하는 것 같다. 그는 "대부분의 내 작품은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다. (모든 시가) 꼭 진지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숙한 풍경과 풍경이 맞물려 빚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 일상의 언어로 쓰인 그의 시는 난해하고 전위적인 표현이 대세를 이루는 2000년대 젊은 시단에서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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