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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뒤에 희망의 그림자가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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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뒤에 희망의 그림자가 보이세요?

입력
2012.06.0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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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었다 가늘어지는 거친 붓질의 흔적이 벽에 걸린 브론즈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 때문인지 육중한 브론즈에는 지금 막 그려낸 듯, 가볍고 즉흥적인 느낌이 살아 있다. 천장의 조명을 받은 브론즈 작품 뒤로 또 하나의 드로잉이 새겨진다. 조각가 겸 화가 김원숙(59)씨는 벽면의 그림자까지 작품으로 염두에 두었던 듯 이들 신작에 '그림자 드로잉'이란 이름을 붙였다.

"순간의 인상을 즉흥적으로 그려내는 드로잉을 워낙 좋아했어요. 그래서 좀 더 영구적으로 남길 방법이 없나 고민하다 브론즈 드로잉을 고안했어요. 왁스를 녹여 큰 동양화 붓으로 형태를 만들고 청동으로 본을 떠낸 거죠. 큰 작품은 4,5개로 나눠 작업해야 할 정도로 힘이 들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전시장에서 만난 김씨는 작품 설명 중에도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5년 만에 여는 개인전을 위해 김씨는 지난해 초부터 시작한 '그림자 드로잉' 시리즈를 비롯해 1980년대부터 지속해 온 '집' 시리즈, '일상의 신화', '숲 속의 정경' 등 네 가지 테마의 근작을 한 자리에 모았다. 회화, 조각, 브론즈 드로잉 등 표현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의 작품을 줄곧 관통해 온 이야기성엔 변함이 없다.

여러 점의 회화를 한 벽면에 걸어 아예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굳이 한 자리에 걸지 않아도 그의 작품은 각각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가 평소 접하는 음악이나 책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꽃을 태우는 남미의 잉카 문명에서 나온 치유의식과 독일 작곡가 슈만의 '숲 속의 정경'은 그림으로 담겼고, 고대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는 브론즈 드로잉이 됐다.

여기에 유머러스한 작가의 일상이 덧대어진다. 건망증 탓에 하루에도 집안 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는 자신의 모습은 얼굴이 앞뒤로 달린 채 계단 위에 선 여자 조각에 담겼다. 또 네 개의 손으로 얼굴을 가린 브론즈 드로잉에는 기쁘거나 당황스러웠던 순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김씨 집 마당의 복숭아 나무는 여러 점의 그림으로 남았는데 '불멸의 과수원'(2010)은 특히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아무리 나눠줘도 화수분처럼 맺히던 복숭아를 그는 자신이 나무 옆 캔버스에서 끊임없이 과일을 그려내는 것으로 표현했다.

197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화단에서 활동해온 그는 "느긋이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자신의 주특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번 이혼의 아픔도 겪었지만 타고난 긍정의 힘은 같은 일상도 달리 보게 한다.

"제 작품은 심각하게 보면 에센스가 달아나요. (긍정적인 성격은)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도 있지만 재혼한 남편에게서도 많이 배우죠. 남편은 미국으로 입양된 혼혈의 한국 전쟁 고아인데요, 그 아이의 시선으로 보면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은 횡재인 셈이거든요."

그는 자신에게 캔버스는 곧 삶을 향해 뚫린 '창문'이라면서, "이쪽으로 창을 열면 같은 장소에서도 풍경이 달리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갤러리에서 열린다. (02) 2287-3591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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