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 역사에서 단기간 동안에 가장 유명해진 사람을 꼽으라면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고 그중 한명이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최 측근으로 느닷없이 부상한 탓도 있겠지만, 앞 뒤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면서 언론 바람을 가장 많이 탔기 때문일 테다.
그는 비대위원 시절 강남 서초 대구 같은 우세지역에 좀더 혁신적인 공천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하지만 상징적인 다선 의원들을 대거 퇴진시킨 것이 총선승리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봤다. 또 새누리당이 비대위를 구성해 공천 개혁을 할 때 야권은 기계적인 통합론에 몰두하면서 자멸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완전국민경선제를 하는 나라가 거의 없고, 이는 헌법에 규정된 정당의 자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세상에 인간은 보수하고 진보 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며"말이 막히면 상대방을 좌파로 몰아 붙이는 진영논리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가해 졌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살 것 같죠. 기자들한테 전화 안 받고. 하하하.
그 전에는 아침부터 전화 오고 그랬죠. 2월 달까지 공천심사 위원회 때가 제일 바빴죠.1월, 2월은 대단했죠. 제가 단기간 동안에 가장 정치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그러데요. 맞아요?
-가장 이름이 많이 알려졌죠.
단기간에, 갑자기 그냥. 그전에는 아는 사람은 알고 관심 없는 사람은 알지 못했는데 그렇게 되어 버렸죠. 한 때는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 보니까 내 기사가 너무 많아서 컴퓨터를 꺼버렸어. 그게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내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내가 한 거지 뭐. 그런 거잖아. 아침 방송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을 한 거지.
-비상대책위원들이 너무 말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말이 많은 게 아니라 언론이 요구를 했잖아. 요청하지 말아야지. 하하하. 아무튼 그렇더라고요. 현안문제 같은 거 가지고 연합뉴스니 YTN 이니 나와라 그러면 안 갈 수도 없고.
-비대위 기간에 대한 평가가 어떤가요.
총 4개월인데 사실 3개월이죠. 총선 끝나면 그만이었으니깐. '아 이거 잘했다'기 보다도 아쉬운 부분이 구체적으로 몇 가지가 있죠. 예를 들어서 정치쇄신분과에서 공천제도 같은 거 연구했는데 그것이 공천위원회에 넘어가면서 실종되어버린 경우가 있었죠. 개인적으로 우세지역 공천은 좀 더 잘했어야 되는 게 아닌가, 강남 서초 대구 같은 곳일수록 좀 더 개혁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틀을 벗어나고, 미래의 목(木)이 될만한 사람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질질 끌다가 나중에 급해졌죠. 그런 데서 아쉬운 점이 좀 있죠. 과거에도 비대위 같은 게 있었잖아요. 중간 계파 보스들끼리 하는 게 비대위 잖아요.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했으면 잘 됐을까요? 틀림없이 통합적으로 망했겠지. 박근혜 전 위원장이 정치적 감각 이런 것이 있어. 필요할 땐 결단력이 있었다고 보여져요. 탁탁 끊어서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 몇 번 있었어요. 정당 강령에서 보수 빼는 거 언론에서 흘러나올 때 그 문제가 불필요한 것 같으니깐, 불필요하다 했고, 돈 봉투 검찰수사 때도 구태정치 척결하겠다는 메시지가 굉장히 강력했잖아요. 그런 것을 잘 잡았다고 봐요. 그 두 가지에서 굉장히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거죠.
-비대위에 들어왔을 때는 좀 망가지는 분위기였는데.
돈 봉투 사건으로 계속 추락했어요. 그 때 아마 여론조사도 제일 떨어져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저는 돈 봉투 사건 검찰 수사할 때 이게 바닥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차피 그 사건들은 박근혜 전 위원장과 관계가 없는 거니깐. 구태정치 척결이 가시화 되면 인기가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회복한 거죠. 그 다음에 주목을 했던 것이 의원총회였죠. 그 때 현역 지역구 의원 여론조사 하위 25% 컷 오프를 의원총회에서 승인 받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는 게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1월 말 되니까 좀 안정적으로 돼서 망하지는 않겠구나, 1월 초까지는 100석 말하기도 좀 그렇더라고요. 또 우리도 우리지만, 당시 야권에서 통합론에 너무 몰두했잖아. 난 그렇게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죠. 무리하게 기계적인 통합에만 몰두했잖아요. 그게 과연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 때 주변을 다 휩쓸어서 시너지효과가 나온다고 했었는데, 난 그런 걸 잘 안 믿거든.
-비대위를 빨리 꾸린 게 결국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요.
빨리 꾸린 것이 아니라 당시 더 이상 선택이 없었잖아요. 처음에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맡으라 했을 때 이걸 왜 나한테 그러냐 그랬다는 거 아니에요. 그 당시 박근혜 전 위원장이 맡지 않았으면 또 다른 형태의 비대위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죠. 그랬으면 쪽박 찬 거죠. 하하하.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개인적인 카리스마 같은 것도 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도 있겠지만, 그거보다는 깨끗한 정치를 원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담겨있다고 봐요. 공천 관련해서도 상징적 인물들이 많이 퇴진했잖아요. 그거 안 했으면 안됐죠. 실명은 말하지 맙시다. 수도권에 논란이 많았죠. 부정적인 의미로. 대거 탈락이 됐잖아요. 25% 컷 오프니 전략공천이니. 그렇게 탈락이 된 것들이 여론 몰이 같은 거가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건졌다고 봐요. 그거 안 했으면 사람이 안 바뀌는데 누가 인정을 합니까. 논란이 뭔지는 잘 봐야죠. 어차피 수도권은 어렵다 그래도 보통 딴 곳도 영향이 가요. 난 그랬기 때문에 충청, 강원이 바뀌었다고 봐요. 거기가 지방선거 때 전멸 했잖아요.
-탈락한 분들은 불만이 많겠네요.
논란이 많았다고 합시다. 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뭐 어떡합니까 그런걸. 그런 거 생각하면 하지 말았어야죠. 편안히 그냥 80석, 90석 했어야죠. 덕분에 잘 됐잖아요. 2010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 때 계산하면, 그거밖에 안 나와요. 강원 전멸, 충북 전멸, 서울은 강남 빼고 전멸, 경기도는 성남, 분당 빼고 전멸이죠.
-당시 보수에서 중도로 옮겨간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것도 성공한 거죠. 그거 못했으면 우린 안됐죠. 돌이켜보면 4.27선거에서 분당을 강재섭 전대표가 손학규룰 상대로 좌파라고 그러다 떨어졌잖아요. 그리고 지방 선거 때 무상급식을 좌파적 포퓰리즘이라고 하다 대패했고, 서울시 주민투표 똑같은 이유로 졌고, 서울시장선거에 대패했고. 그런 논리 들이 틀린다는 것이 입증이 됐죠. 우리 편 아닌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면 중도ㆍ중산층을 적으로 만드는 거죠. 이번 선거과정에서 그런 단어가 안 나왔어요.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은 안 나왔어요. 서울시장 선거 때, 한나라당 대표 및 대변인들 후보 등 다 모여서 무슨 얘기했나 함 봐요. 사실은 맞더라도 그런걸 떠드는 게 아니라고요. 그때 참패했잖아요.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야권이 자멸한 측면도 있겠지요.
김용민 효과도 조금 있었지만 그게 결정적이라고 보진 않아요. 몇 석 차이 정도. 민간인 사찰 같은 것도 KBS가 선거 도중에 터뜨렸잖아요. 아주 타이밍도 고약하게 터뜨렸거든. 하지만 일단 거기에 대해 박근혜 전 위원장이 책임을 질 필요는 없는 거더라고. 야당에서 우리랑 엮으려고 굉장히 애를 썼었지. 뭐 이명박근혜니, 한명숙 총리가 그랬잖아. 박근혜 전 위원장이 이명박 정권의 조수석에 탔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내가 '조수석이 뭔 말이냐,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 했다'고 했죠. 92년 대선 때 '초원복집 사건'같은 그런 효과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또 야당이 미국 대사관 가서 데모한 거, 제주 해군기지 집단으로 간 것 등이 문제였죠. 민주당, 진보당이 쇠고기, 자동차 협상 등에서 부분적인 조항을 가져다가 잘못 협상했다고 그랬으면 골치 아플 뻔했어요. 제주 해군기지도 입지 과정에 절차 잘못됐다, 주민들을 무시했다 그랬으면 골치 아팠죠. 오히려 집단 데모를 하니까 그런 것이 묻혀버렸어요. 그런 것들이 도와준 것이고. 기본적으로 제일 큰 것은 당의 이름, 색깔, 로고, 당 얼굴뿐 아니라, 주요 인물들이 바뀌었다는 것, 인적 쇄신 그거 굉장히 무서운 말이잖아요. 비전과 정책과 사람을 쇄신하겠다는 말이잖아요. 부산에서는 다선 의원들 다 바꿨잖아요. 저축은행이니 뭐니, 책임질만한 사람은 대거 뺐죠. 문성근 떨어뜨린 사람도 무명의 변호사였잖아요. 그래서 부산 공천이 선전했다고 봐요.
-공천 심사위원회하고 갈등이 심했나요.
그때 이것저것 있었잖아요. 처음에 이재오, 윤진식 사건이죠. 그래서 김종인 박사는 이건 의미가 없다, 난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게 첫 번째 라운드고, 두 번째 라운드는 강남 갑, 을 그리고 대구 을 공천이었어요. 그런데 공천이라는 것이 100% 지고지순 할 수는 없잖아요.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얽히고 설키니깐.
-문대성과 김형태는 완전히 묻혀버렸어요.
그 건은 우리 공천 끝날 때까지 몰랐지. 알았으면 안 했겠지요. 그런데 이번 공천에는 병역 면제자들이 거의 없다고요. 특별한 경우 빼고서는. 원칙적으로 병역을 마친 사람이 공천됐어요. 다음부터는 이제 박사들도 털어야 되요. 하하하. 대학도 책임을 져야 해요. 그게 그렇게 될 지 몰랐어요. 공천을 줘버리니까 내버릴 수가 없잖아요. 참 어렵더라고요. 골치 아프게 됐죠. 탈당하면 그만이죠. 출당을 시켜야 한다고 하니까 탈당한 거 아닙니까.
-오픈프라이머리 때문에 시끄러운데, 흥행은 필요하지 않나요.
근데 나는 그게 흥행이 아니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미국적인 제도인데 지금도 논란이 많은 거에요. 50개 주 중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하는 곳은 20개도 채 안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경선해서 후보 됐나요. 현직 대통령이라도 그런 법은 없다고. 아버지 부시가 92년에 경선 너무 치열하게 해서 본선에 진 거라고. 진을 다 빼가지고. 문제는 의미 있는 경쟁자지요. 완전국민경선제를 세계적으로 몇 나라나 합니까. 정당의 자치를 부정하는 거죠.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제한적으로 한번 시험을 해봐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러면 지금 주장하는 사람이 이재오, 정몽준 이죠. 2008년 총선은 이재오가 주도한 것 아닙니까. 2010년 지방선거는 정몽준이 주도했잖아요. 자기들이 주도할 때, 해봤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들이 주도할 때 했었어요? 말도 안 꺼냈잖아. 왜 지금 시비를 걸어. 변명할 여지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의도가 다른 데 있다, 흔들어보겠다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에요. 지난번에도 국회의원 공천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당원 20%, 일반인 80%로 선거에서 했었는데 사실상 20% 당원이 하는 거야. 경선 시점부터 투표하라고 그러면 일반인이 누가 오겠어. 당원들만 오는 거지. 여론조사가 차라리 정직하죠.
-차기 당 지도부가 전부 '친박'일색이라 너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요.
너무한 게 아니라, 결과가 그렇게 됐는데 뭘. 그럼 자기들이 주류였을 때 잘하면 됐을 것 아니야. 다 실패했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당내 민주주의는 없느냐? 그렇지 않잖아요. 이번에 쇄신 파 같은 경우에는 유력한 비주류 성 목소리를 낼 것이고 그게 자연스럽게 분파가 나눠지는 거죠. 앞으로는 얼마나 합리적인 결정으로 가느냐, 당을 잘 이끌어 가느냐 그게 문제지. 이게 중요한 정치적인 변혁기를 거친 거 아닙니까? 새로운 질서가 형성이 된 거잖아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촛불집회 참가 하고,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보수인지 진보인지 헷갈린다는 지적이 있어요.
우리나라 정치 역사에서 단기간 동안에 가장 유명해진 사람을 꼽으라면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고 그중 한명이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최 측근으로 느닷없이 부상한 탓도 있겠지만, 앞 뒤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면서 언론 바람을 가장 많이 탔기 때문일 테다.
그는 비대위원 시절 강남 서초 대구 같은 우세지역에 좀더 혁신적인 공천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하지만 상징적인 다선 의원들을 대거 퇴진시킨 것이 총선승리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봤다. 또 새누리당이 비대위를 구성해 공천 개혁을 할 때 야권은 기계적인 통합론에 몰두하면서 자멸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완전국민경선제를 하는 나라가 거의 없고, 이는 헌법에 규정된 정당의 자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세상에 인간은 보수하고 진보 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며"말이 막히면 상대방을 좌파로 몰아 붙이는 진영논리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가해 졌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살 것 같죠. 기자들한테 전화 안 받고. 하하하.
그 전에는 아침부터 전화 오고 그랬죠. 2월 달까지 공천심사 위원회 때가 제일 바빴죠.1월, 2월은 대단했죠. 제가 단기간 동안에 가장 정치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그러데요. 맞아요?
-가장 이름이 많이 알려졌죠.
단기간에, 갑자기 그냥. 그전에는 아는 사람은 알고 관심 없는 사람은 알지 못했는데 그렇게 되어 버렸죠. 한 때는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 보니까 내 기사가 너무 많아서 컴퓨터를 꺼버렸어. 그게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내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내가 한 거지 뭐. 그런 거잖아. 아침 방송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을 한 거지.
-비상대책위원들이 너무 말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말이 많은 게 아니라 언론이 요구를 했잖아. 요청하지 말아야지. 하하하. 아무튼 그렇더라고요. 현안문제 같은 거 가지고 연합뉴스니 YTN 이니 나와라 그러면 안 갈 수도 없고.
-비대위 기간에 대한 평가가 어떤가요.
총 4개월인데 사실 3개월이죠. 총선 끝나면 그만이었으니깐. '아 이거 잘했다'기 보다도 아쉬운 부분이 구체적으로 몇 가지가 있죠. 예를 들어서 정치쇄신분과에서 공천제도 같은 거 연구했는데 그것이 공천위원회에 넘어가면서 실종되어버린 경우가 있었죠. 개인적으로 우세지역 공천은 좀 더 잘했어야 되는 게 아닌가, 강남 서초 대구 같은 곳일수록 좀 더 개혁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틀을 벗어나고, 미래의 목(木)이 될만한 사람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질질 끌다가 나중에 급해졌죠. 그런 데서 아쉬운 점이 좀 있죠. 과거에도 비대위 같은 게 있었잖아요. 중간 계파 보스들끼리 하는 게 비대위 잖아요.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했으면 잘 됐을까요? 틀림없이 통합적으로 망했겠지. 박근혜 전 위원장이 정치적 감각 이런 것이 있어. 필요할 땐 결단력이 있었다고 보여져요. 탁탁 끊어서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 몇 번 있었어요. 정당 강령에서 보수 빼는 거 언론에서 흘러나올 때 그 문제가 불필요한 것 같으니깐, 불필요하다 했고, 돈 봉투 검찰수사 때도 구태정치 척결하겠다는 메시지가 굉장히 강력했잖아요. 그런 것을 잘 잡았다고 봐요. 그 두 가지에서 굉장히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거죠.
-비대위에 들어왔을 때는 좀 망가지는 분위기였는데.
돈 봉투 사건으로 계속 추락했어요. 그 때 아마 여론조사도 제일 떨어져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저는 돈 봉투 사건 검찰 수사할 때 이게 바닥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차피 그 사건들은 박근혜 전 위원장과 관계가 없는 거니깐. 구태정치 척결이 가시화 되면 인기가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회복한 거죠. 그 다음에 주목을 했던 것이 의원총회였죠. 그 때 현역 지역구 의원 여론조사 하위 25% 컷 오프를 의원총회에서 승인 받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는 게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1월 말 되니까 좀 안정적으로 돼서 망하지는 않겠구나, 1월 초까지는 100석 말하기도 좀 그렇더라고요. 또 우리도 우리지만, 당시 야권에서 통합론에 너무 몰두했잖아. 난 그렇게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죠. 무리하게 기계적인 통합에만 몰두했잖아요. 그게 과연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 때 주변을 다 휩쓸어서 시너지효과가 나온다고 했었는데, 난 그런 걸 잘 안 믿거든.
-비대위를 빨리 꾸린 게 결국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요.
빨리 꾸린 것이 아니라 당시 더 이상 선택이 없었잖아요. 처음에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맡으라 했을 때 이걸 왜 나한테 그러냐 그랬다는 거 아니에요. 그 당시 박근혜 전 위원장이 맡지 않았으면 또 다른 형태의 비대위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죠. 그랬으면 쪽박 찬 거죠. 하하하.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개인적인 카리스마 같은 것도 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도 있겠지만, 그거보다는 깨끗한 정치를 원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담겨있다고 봐요. 공천 관련해서도 상징적 인물들이 많이 퇴진했잖아요. 그거 안 했으면 안됐죠. 실명은 말하지 맙시다. 수도권에 논란이 많았죠. 부정적인 의미로. 대거 탈락이 됐잖아요. 25% 컷 오프니 전략공천이니. 그렇게 탈락이 된 것들이 여론 몰이 같은 거가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건졌다고 봐요. 그거 안 했으면 사람이 안 바뀌는데 누가 인정을 합니까. 논란이 뭔지는 잘 봐야죠. 어차피 수도권은 어렵다 그래도 보통 딴 곳도 영향이 가요. 난 그랬기 때문에 충청, 강원이 바뀌었다고 봐요. 거기가 지방선거 때 전멸 했잖아요.
-탈락한 분들은 불만이 많겠네요.
논란이 많았다고 합시다. 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뭐 어떡합니까 그런걸. 그런 거 생각하면 하지 말았어야죠. 편안히 그냥 80석, 90석 했어야죠. 덕분에 잘 됐잖아요. 2010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 때 계산하면, 그거밖에 안 나와요. 강원 전멸, 충북 전멸, 서울은 강남 빼고 전멸, 경기도는 성남, 분당 빼고 전멸이죠.
-당시 보수에서 중도로 옮겨간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것도 성공한 거죠. 그거 못했으면 우린 안됐죠. 돌이켜보면 4.27선거에서 분당을 강재섭 전대표가 손학규룰 상대로 좌파라고 그러다 떨어졌잖아요. 그리고 지방 선거 때 무상급식을 좌파적 포퓰리즘이라고 하다 대패했고, 서울시 주민투표 똑같은 이유로 졌고, 서울시장선거에 대패했고. 그런 논리 들이 틀린다는 것이 입증이 됐죠. 우리 편 아닌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면 중도ㆍ중산층을 적으로 만드는 거죠. 이번 선거과정에서 그런 단어가 안 나왔어요.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은 안 나왔어요. 서울시장 선거 때, 한나라당 대표 및 대변인들 후보 등 다 모여서 무슨 얘기했나 함 봐요. 사실은 맞더라도 그런걸 떠드는 게 아니라고요. 그때 참패했잖아요.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야권이 자멸한 측면도 있겠지요.
김용민 효과도 조금 있었지만 그게 결정적이라고 보진 않아요. 몇 석 차이 정도. 민간인 사찰 같은 것도 KBS가 선거 도중에 터뜨렸잖아요. 아주 타이밍도 고약하게 터뜨렸거든. 하지만 일단 거기에 대해 박근혜 전 위원장이 책임을 질 필요는 없는 거더라고. 야당에서 우리랑 엮으려고 굉장히 애를 썼었지. 뭐 이명박근혜니, 한명숙 총리가 그랬잖아. 박근혜 전 위원장이 이명박 정권의 조수석에 탔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내가 '조수석이 뭔 말이냐,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 했다'고 했죠. 92년 대선 때 '초원복집 사건'같은 그런 효과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또 야당이 미국 대사관 가서 데모한 거, 제주 해군기지 집단으로 간 것 등이 문제였죠. 민주당, 진보당이 쇠고기, 자동차 협상 등에서 부분적인 조항을 가져다가 잘못 협상했다고 그랬으면 골치 아플 뻔했어요. 제주 해군기지도 입지 과정에 절차 잘못됐다, 주민들을 무시했다 그랬으면 골치 아팠죠. 오히려 집단 데모를 하니까 그런 것이 묻혀버렸어요. 그런 것들이 도와준 것이고. 기본적으로 제일 큰 것은 당의 이름, 색깔, 로고, 당 얼굴뿐 아니라, 주요 인물들이 바뀌었다는 것, 인적 쇄신 그거 굉장히 무서운 말이잖아요. 비전과 정책과 사람을 쇄신하겠다는 말이잖아요. 부산에서는 다선 의원들 다 바꿨잖아요. 저축은행이니 뭐니, 책임질만한 사람은 대거 뺐죠. 문성근 떨어뜨린 사람도 무명의 변호사였잖아요. 그래서 부산 공천이 선전했다고 봐요.
-공천 심사위원회하고 갈등이 심했나요.
그때 이것저것 있었잖아요. 처음에 이재오, 윤진식 사건이죠. 그래서 김종인 박사는 이건 의미가 없다, 난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게 첫 번째 라운드고, 두 번째 라운드는 강남 갑, 을 그리고 대구 을 공천이었어요. 그런데 공천이라는 것이 100% 지고지순 할 수는 없잖아요.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얽히고 설키니깐.
-문대성과 김형태는 완전히 묻혀버렸어요.
그 건은 우리 공천 끝날 때까지 몰랐지. 알았으면 안 했겠지요. 그런데 이번 공천에는 병역 면제자들이 거의 없다고요. 특별한 경우 빼고서는. 원칙적으로 병역을 마친 사람이 공천됐어요. 다음부터는 이제 박사들도 털어야 되요. 하하하. 대학도 책임을 져야 해요. 그게 그렇게 될 지 몰랐어요. 공천을 줘버리니까 내버릴 수가 없잖아요. 참 어렵더라고요. 골치 아프게 됐죠. 탈당하면 그만이죠. 출당을 시켜야 한다고 하니까 탈당한 거 아닙니까.
-오픈프라이머리 때문에 시끄러운데, 흥행은 필요하지 않나요.
근데 나는 그게 흥행이 아니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미국적인 제도인데 지금도 논란이 많은 거에요. 50개 주 중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하는 곳은 20개도 채 안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경선해서 후보 됐나요. 현직 대통령이라도 그런 법은 없다고. 아버지 부시가 92년에 경선 너무 치열하게 해서 본선에 진 거라고. 진을 다 빼가지고. 문제는 의미 있는 경쟁자지요. 완전국민경선제를 세계적으로 몇 나라나 합니까. 정당의 자치를 부정하는 거죠.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제한적으로 한번 시험을 해봐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러면 지금 주장하는 사람이 이재오, 정몽준 이죠. 2008년 총선은 이재오가 주도한 것 아닙니까. 2010년 지방선거는 정몽준이 주도했잖아요. 자기들이 주도할 때, 해봤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들이 주도할 때 했었어요? 말도 안 꺼냈잖아. 왜 지금 시비를 걸어. 변명할 여지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의도가 다른 데 있다, 흔들어보겠다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에요. 지난번에도 국회의원 공천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당원 20%, 일반인 80%로 선거에서 했었는데 사실상 20% 당원이 하는 거야. 경선 시점부터 투표하라고 그러면 일반인이 누가 오겠어. 당원들만 오는 거지. 여론조사가 차라리 정직하죠.
-차기 당 지도부가 전부 '친박'일색이라 너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요.
너무한 게 아니라, 결과가 그렇게 됐는데 뭘. 그럼 자기들이 주류였을 때 잘하면 됐을 것 아니야. 다 실패했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당내 민주주의는 없느냐? 그렇지 않잖아요. 이번에 쇄신 파 같은 경우에는 유력한 비주류 성 목소리를 낼 것이고 그게 자연스럽게 분파가 나눠지는 거죠. 앞으로는 얼마나 합리적인 결정으로 가느냐, 당을 잘 이끌어 가느냐 그게 문제지. 이게 중요한 정치적인 변혁기를 거친 거 아닙니까? 새로운 질서가 형성이 된 거잖아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촛불집회 참가 하고,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보수인지 진보인지 헷갈린다는 지적이 있어요.
그런 이야기 하는 부류가 많이 있지. 세상에 인간은 보수하고 진보 둘밖에 없는 건가. 우리가 이렇게 망가진 것이 진영논리잖아. 이게 말이 막히면 상대방을 좌파로 몰아 붙였던 것 아니야. 우리나라 보수 지식인들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경제학자들이 노무현 정권 때 뭘 주장했어. 노 대통령이 토목공사에 돈을 쓴다고 작은 정부가 아니고, 낭비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 정권에 들어와서는 입 다물었잖아요. 할 말이 있냐고. 할 말이 없잖아요. 그래서 지식인은 할 말을 할 때 해야 되는 거에요.
-곁에서 지켜본 박근혜는 어땠습니까.
남들이 밖에서 생각하는 이미지라는 것은 좀 지어낸 그런 것이 많아요. 얼음공주 이런 것. 행동에 격이 있는 분이죠. 정치적인 판단이 굉장히 서 있는 분이에요.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내다보고 있고 단호할 때, 끊을 때는 끊을 수 있는 매서운 면이 있죠. 그 정도 아닌가 싶어요.
● 이상돈은 누구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법학 학ㆍ석사를 마친 뒤, 툴레인대 법학 석사, 마이애미대 법학 석ㆍ박사 등을 거쳤다. 저서로는 <조용한 혁명> <비판적 환경주의자>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등이 있다. 1983년부터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역임했다. 위기에> 비판적> 조용한>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