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은 점령 국가의 제품일까 아닐까.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서안지구에서 생산된 제품을 놓고 원산지 표기 논란이 불붙었다. 요르단강서안이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강제 병합한 지역인만큼 이스라엘산이 아닌 점령지 제품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 외국과 무역협상을 할 때마다 남한 기업이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를 북한으로 볼 경우 저관세율 등 FTA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르단강서안은 성격이 좀 다르다.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팔레스타인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은 이스라엘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데 원산지 문제가 활용되고 있다.
원산지 표기 개정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남아공 정부는 지난달 '요르단강서안에서 생산된 제품이 이스라엘의 점령지 제품임을 알 수 있게 표시를 다시 하라'는 내용을 관보에 게재했다. 최근엔 스위스의 슈퍼마켓체인 미그로스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이유로 유사한 조치를 내놨고 덴마크 정부도 조만간 점령지역 원산지 표기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은 점령지 제품을 아예 면세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요르단강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화장품과 고급 와인 등으로 연간 수출액(500억달러)의 1%가 채 안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메이드 인 이스라엘'로 표기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 이 지역이 이스라엘의 공식 영토가 아닌 탓이다. AP통신은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서안에만 유대인 50만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두 곳을 40년 넘게 실효 지배하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 측은 다른 나라들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반발한다. 이갈 팔머 이스라엘 외교부 대변인은 "원산지 표기는 제품을 생산ㆍ관리ㆍ감독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점이 중요하다"며 "모로코가 같은 분쟁지역인 서사하라 지역에서 생산, 수출하는 토마토에 대해서는 왜 모로코산을 인정하느냐"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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