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경제활동의 소중한 도구입니다. '도구'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시장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 로 한국사회에 '정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시장과 정의'란 새 화두를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최근 발간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에 '시장경제'를 넘어 시장이 모든 영역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시장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담았다. 돈으로> 정의란>
샌델 교수는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주의적 자유시장주의 사상이 극단적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지난 20여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들이 점점 더 개인주의와 자유시장주의를 수용하는 흐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사회가 그렇게 변화한 것은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샌델이 월가 점령 시위에 참여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처럼 자본주의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는 자본주의가 전복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 "오히려 시장이 공공선에 이익이 되는 분야, 반대로 해가 되는 분야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교육, 의료 접근권 등에서 돈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최대 목표로 공익을 강조한 그는 "많은 경우 공공선은 정당 간 권력 다툼, 단체 간의 이익 다툼으로 흘러간다. 최근에는 경제가 민주주의 정치를 우리사회에서 밀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한국의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 공정경쟁에 관한 논쟁에 대해선 "외국인으로 적절한 정책을 제안하긴 어렵지만, 소비자에게 최적가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유일한 가치는 아니며 중소기업도 대기업 못지않게 일자리 창출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자신의 강의를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했던 그는 "고등교육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공재가 돼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접근권이 지금보다 더 적은 돈으로 가능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샌델은 3일로 예정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해 "(첫 만남 당시) 박 시장은 정의, 공공선 같은 철학적 논의와 현대 삶의 연관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기대를 표시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당시 후보자와 만난 자리에서 시민사회에서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 정의에 관해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한편 샌델 교수는 이날 오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연 공개 강연에서 아산정책연구원과 공동 진행한 '한미 사회정의 인식 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돈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다. 양국 국민 각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62.7%가 미국사회가 공정하다고 인식한 반면 한국인의 73.8%는 한국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또 한국인의 72.2%는 정부가 공공선을 위해 시장경제에 개입해야 하며, 63.7%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미국인은 두 문항에 대해 각각 51.9%, 42.9%만 찬성했다. 샌델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 조사 결과에 대해 "미국은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반면, 한국은 공익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조사가 정의, 돈의 역할 등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수연 인턴기자(성신여대 국어국문 4)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