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붕괴'/ 카를로 스트렝거 지음ㆍ최진우 옮김ㆍ하늘눈 발행ㆍ341쪽ㆍ1만 6000원
'멘탈붕괴'의 줄임말 '멘붕'.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이 말은 당혹스럽거나 창피한 일을 당해 정신이 나간 듯한 상태를 가리킨다. 처음엔 가벼운 농담처럼 입에 올리던 말이 지금은 어둡고 무거운 신호가 됐다. 불안, 좌절, 분노, 무기력감, 정신적 공황, 의미 상실 등 멘붕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우울증 등 정신질환과 자살은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멘붕은 심약하고 무능한 루저들의 병일까. 이스라엘 심리학자 카를로 스트렝거(텔아비브대 교수)는 멘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20년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지속적이고 세계적인 병리현상이라고 진단한다. <멘탈붕괴> 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다. 멘탈붕괴>
신자유주의와 멘붕이 무슨 상관이냐.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시장 만능과 무한 경쟁을 외치는 신자유주의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숫자로 따지고 인간의 가치조차 순위를 매긴다. 인기도와 금전적 성공이 그 척도다. 자본과 노동이 국경 없이 넘나들고, 인터넷 등 혁신적인 소통 기술이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함에 따라 세계화 시대를 사는 '호모 글로벌리스'는 경쟁 상대조차 세계에 맞추게 됐다. 온갖 매체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하면 된다'고 외치지만, 그건 특별한 소수에게나 가능한 일. 99%의 보통 사람들은 거기에 못 미치는 자신이 못 났다고 여기며 상처를 받는다. 바로 여기서 멘붕이 시작된다. '나는 시시한 존재이고 내 삶은 무의미하다'는 열패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대중적 영성에 매달리지만, 그래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면 올바른 처방은 무엇인가. 저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쓸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라고 말한다. "진정한 삶의 드라마는 고유한 개성과 의견, 세계관을 가진 개인으로 사는 것"이라며"자아조차 상품화하는 세계 시장의 요구에 순종하지 말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본론은 실존주의 심리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설명해 나간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실존적 불안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그는 자아의 주체적 재구성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하면 된다'는 거짓 신화에서 벗어나 먼저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계를 안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기 수용'을 뜻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닌 개성을 발견하고 구현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진정 자유로워지려면 "핵심적인 삶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서 결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이 핵심적 가치인지 판단하는 틀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삶의 버팀목이다. 저자는 올바른 세계관을 정립하려면, 각자 속한 사회나 문화에서 어린 시절 주입된 신념에 매달리지 말고, 이성을 통해 세계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세계관에 대한 이성적인 검토와 적극적인 자기 수용이 어떻게 안정적인 정체감과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지 심리치료 사례를 통해 밝힌다. 또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융, 바락 오바마, 아스토르 피아졸라, 찰스 핸디 등 유명인들이 겪은 삶의 변화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분석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멘붕은 세계적 현상이라는 진단에서 출발한 책답게 마무리도 글로벌하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세계시민주의와 열린 세계관의 연대를 제창한다. 호모 글로벌리스는 좋든 싫든 운명 공동체여서 "살아 남으려면 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주선 지구호에 동승한 상태에서 환경 파괴에 따른 위기 등 인류 절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난파는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래도 정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관이 있거든 "고상하게 경멸하라"고 말한다. 고상한 경멸은 치열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되, 그 대상인 세계관을 지지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맘에 안 든다고 폭력을 쓰거나 척결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원서는 2011년 나왔다. 원제는 'The Fear of Insignificance'다. 'Insignificance'는 시시함, 보잘것없음, 하찮음을 가리키니, 시시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보통사람들의 강박증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오를 수 없는 나무를 쳐다보며 괴로워하다가 멘붕에 이른 호모 글로벌리스들에게 심리학자가 보내는 처방전인 셈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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