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경제가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은행시스템 붕괴, 국채 수익률 급등에 이어 자금 유출이 위험수위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의 구제금융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페인 중앙은행의 자료를 인용, "경제위기가 심화한 스페인에서 1분기 동안 970억유로(약 141조원)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며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5월 31일 보도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스페인 관련 자산을 지속적으로 팔아 치우는, '자산 엑서더스(대탈출)' 현상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전날 스페인의 국채 금리(10년 만기)가 연중 최고치(6.66%)를 기록한 것도 극심한 자금 고갈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스페인 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제공한 장기저리대출프로그램(LTRO)에 힘입어 자국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이 LTRO 자금으로 국채를 사들였지만 자금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얘기다. IHS글로벌인사이트의 라즈 바디아니 연구원은 "이 통계가 가장 최근의 수치가 아니라는 점이 더욱 우려스럽다"며 "우리는 조만간 '퍼펙트 스톰(최악의 위기)'을 목도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제 스페인 정부가 기댈 곳은 ECB 뿐이다. 차입금리 상승으로 돈을 꿀 데가 마땅치 않은 탓에 스페인 관리들은 ECB의 국채 직접 매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하지만 ECB는 스페인 정부의 위기대응 방식을 거세게 질타하며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스페인 감독당국이 구제금융 비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1차 평가에 이어 2~4차 평가를 하고 그때마다 추가 지원을 하는데 이는 최악의 처리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2월 은행에 대한 추가 공적자금은 없다고 장담했던 스페인 정부가 최근 방키아에 190억유로를 지원한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ECB는 이미 1, 2차 LTRO를 통해 스페인에 3,000억유로를 지원했다.
ECB 마저 등을 돌리면서 스페인의 구제금융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스페인이 방키아은행에 대한 지원자금 마련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비용을 떠맡는 긴급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스페인 정부는 현재 방키아에 필요한 190억유로 중 100억유로가 부족한 상황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보도 직후 "스페인 구제금융과 관련해 어떠한 재정지원 작업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IMF가 4일 스페인 경제 정기 실사에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후속 조치가 뒤따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편 이날 미국의 1분기 GDP 성장률이 잠정치(2.2%)를 밑도는 1.9%로 하향조정되면서 세계 경제의 동반 둔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분기 성장률 수정치는 지난해 4분기(3.0%) 경제성장률보다 크게 낮아진 것이다. 미국의 5월 실업률은 예상을 웃도는 8.2%로 나타났고 4월 개인소득은 예상에 못미치는 0.2% 증가에 그쳤다. FT는 "성장률과 고용지표의 둔화는 미 경제의 회복 추세가 약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밝혔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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