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스티븐 랜즈버그 지음ㆍ김세진 옮김/부키 발행ㆍ316쪽ㆍ1만6000원
'1% 대 99%'로 상징되는 소득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인위적인 부의 재분배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워렌 버핏이 제안한 부자세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냐고 의문을 품는다. 단순히 남보다 돈이 많다고 정부가 부자세를 거두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사유방식이 있고 거기에 따라 판단하고 결론 내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한 사유인지, 단지 이미 만들어진 사회의 사고방식일 뿐인지 의문이 남는다. 이럴 때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은 삶을 묻는 학문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각자 자기만의 사유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스티븐 랜즈버그 로체스터대 교수는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 (원제 The Big Qestions)에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런 딜레마들을 쾌도난마식으로 풀어낸다. 랜즈버그는 이미 저서 <런치타임 경제학> <발칙한 경제학> 을 통해 경제현상을 전통적인 경제학 틀에서 벗어나 재기발랄하고 발칙한 시각으로 조명해 주목을 받았다. 발칙한> 런치타임> 경제학자>
랜즈버그는 시카고대와 로체스터대에서 각각 수학과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물리학 공부도 제법 했다. 수학에 기반한 우주론으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도 다방면의 지적 통찰을 풀어놓는데, 그 철학적 바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되는 제레미 벤담이 주창한 공리주의(utilitarianism)다. 그러면서 과정보다는 결과로 행동을 판단하는 결과론적 철학이라는 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의 저자 마이클 샌델 같은 행동 자체의 정당성에 주목하는 의무론적 철학과 맞선다. 랜즈버그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하되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의무론적 철학자의 말은 갑갑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전신마비 환자에게나 내릴 수 있는 처방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도대체 현실 어디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정의란>
랜즈버그는 판단하기 어려운 딜레마를 푸는 '마스터 키'로 '경제학자의 황금률(Economist's Golden RuleㆍEGR)'를 제시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이로울 수 있으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이득을 줄 것인가를 비용과 효용 분석으로 따진다. 그는 "내가 숨을 거두기 전에 세상이, 내가 태어날 때보다 더 나빠져서는 안 된다"는 '결과론적 선행(善行)'을 최고의 선으로 본다. 그는 결과론적 선행 여부를 '생산성'의 기준에서 판단했다. 그가 말하는 생산성이란 좀더 넓은 뜻을 함의하는데, 자신을 비롯해 모두가 부담하는 비용보다 자신을 비롯해 모두가 얻을 효용이 크다면 생산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EGR을 적용하면 혼란스러운 것들이 명쾌해진다. 부자에게 세금을 매겨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할까, 남의 것을 훔쳐도 되는가 등등 크고 작은 사안들을 EGR에 대입하면 간단히 해답이 나온다. 예컨대 거짓말을 할 때에도 결과가 좋다면(즉 생산성이 있다면) 해도 괜찮지만, 결과가 나쁘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랜즈버그가 우리 삶과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명쾌하게 풀며 말하려는 논지는 자신의 갇힌 시선을 열어 세상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추론능력과 사고습관이 생기면 복잡하게 얽힌 세상을 더 명확히 판단하고 자신의 신념과 논리를 더 탄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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