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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공간엿보기] <2> 지하철 - 다채로운 익명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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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의 공간엿보기] <2> 지하철 - 다채로운 익명의 공간

입력
2012.06.0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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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한량의 면적은 60.84㎡(3.12m X 19.5mㆍ약 18.4평). 빠듯하게 서너 식구 살 만한 공간이다. 좌석 54석 포함 정원 160명. 통근 시간대 승객이 가장 많이 몰릴 때면 정원의 186% 정도가 타기도 한다(서울메트로 추산). 운 나쁘게 가장 북적일 때 지하철을 탄 승객 한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면적은 산술적으로 약 0.2㎡다. 앉아 가는 승객이 누릴 '호사'를 감안한다면 서서 가는 시민에게 배분되는 공간은 더 야박해진다. 발가락 하나 꼼지락거리려 해도 주변 사람 눈치 살펴야 한다는 말이 그리 심한 과장은 아닐 것이다.

시각적 피로를 최소화하면서 책 읽기 가장 좋은 거리라는 '엘보 디스턴스(elbow distanceㆍ팔꿈치를 휘둘러 닿는 거리)'를 어떤 학자들은 '상대를 사랑할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거리'라고 말한다. 그 취약한 개별성의 공간 안에서는 제아무리 야멸친 이들이어도 으레 침묵한다. 지하철 시민들은 그래서, 마치 모래주머니 매달고 달리는 러너처럼,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녀야 할 어떤 덕목들, 이를테면 질서나 양보, 희생, 나아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배려까지 훈련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두운 지하 공간을 내달려 시민들은 대개 직장이나 학교 같은 곳으로 이동한다. 꼼지락거림의 자유(혹은 억압)의 시공간은, 그러니까, 가정이라는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진입하는, 흔히 쓰는 비유처럼 전장(戰場)으로 향하는 시공간이고 사적 자아가 공적 자아로 오버래핑하는 시공간이다. 공간 디자이너들이 가장 효율적인 분할선으로 꼽는, 수평 수직의 면과 선분들로 구획된 야무지게 차가운 합리의 공간 안에서, 그 꼼지락거림은, 영화 속 괴물들이 변신의 순간 뒤트는 몸짓 혹은 공간의 겹침에서 비롯되는 어지럼증을 견디는 제의의 고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하철 전동차의 실내는 튜브처럼 긴 공간을 따라 평행하게 좌석이 늘어선 원심적 공간이다. 회의실이나 응접실, 카페의 좌석 배치처럼 얼굴을 마주보며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된 구심적 공간과 달리 이 원심적 공간은, 좋게 보자면, 익명의 다수가 개별성의 훼손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공간을 점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배려다.(통로를 따라 초록색으로 구분된 바닥 공간은 보이지 않는 칸막이 구실을 한다.)

하지만 출입문이 열리기 무섭게 각자의 공적 공간 속으로 흩어져가는 승객들은, 구멍 난 수도 호스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처럼, 한 칸을 공유했던 승객 각자의 삶의 내력과 과업의 압박에서 해방된 듯 다급하다. 쫓기듯 계단을 오른 뒤 회전 개찰구를 지나자마자 표나게 느긋해지는 발걸음들이 그런 공상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지하철은, 운전기사를 중심으로 방사상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시내버스와 달리 중심과 높낮이가 없는 편평한 공간이다. 담임교사도 반장도 없이 자율학습 중인 교실 풍경처럼 때로는 나른하고 푸근한 백색 소음의 공간이었다가, 목청 큰 한두 사람의 도발에 금세 분위기가 일변하기도 하는, 그래서 늘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시시각각 다채로운 분위기와 표정이 연출되는 자유분방함도 18평의 공간 안에 있다.

공간에 숨 쉴 수 있는 틈이 열리면, 지하철은 체증 없는 이동이라는 단순 명료한 도구적 의미와 별개로,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소비되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유행과 일기에 밀착된 상품들이 거래되는 서민들의 시장도 되고, 굽은 허리를 안간힘 다해 운신하며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의 일터도 되고, 굵은 글씨로 '급전' '구인ㆍ구직'이라 적힌 다소 미심쩍은 생활정보의 유통공간이 되기도 한다. 승객들은 저마다의 성향과 기분 등등에 따라 익명의 세상과 접촉하는 면적을 넓히기도 좁히기도 한다. 거울 달린 화장도구를 꺼내 볼의 빛깔을 치장하거나 눈썹을 손질하는 이들도 있고, 눈 감고 음악으로 귀를 막아 감각의 거슬림을 최소화하려는 자폐형 승객도 있다. 근래에는 휴대 전자기기를 쥐고 손과 눈과 입을 놀리는 데 바쁜 이들이 다수지만, 두서너 명이 모여 앉거나 서서 자칫 낯뜨거울 수도 있는 화제(話題)로 떠들썩하게 대화하고, 또 드물게나마 시선과 가슴까지 화끈거리게 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커플도 있다.

때로는 우리가 결코 살아내지 못한 방식으로 살았음직한 이들이 절박한 공손함을 담아 손을 벌릴 때도 있다. 대개는 장애를 지닌 이들이 애절한 내용의 쪽지와 함께 건네는 그 공손함이 과분해서, 공간은 일순 가벼운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건넨 쪽지를 애써 외면하는 불편한 시선과 작은 동전이나 지폐를 주섬주섬 꺼내는 낯선 표정들을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는 곳도 지하철 안이다.

'살핀다'고 표현했지만, 지하철 안은 감시ㆍ관리 시선이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선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공간은 사소한 자극에도 쉽사리 과시와 엿보기의 공간으로 전이한다. 살펴서 알 수 있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거의 없다. 가령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절박함의 진실이 드러내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풍문과, 그 풍문에 기대 스스로의 냉담함을 애써 합리화하는 이들도 있다. 소설가 존 버거의 말처럼, 본다는 행위는 "일종의 기도와 같은 것이어서 절대적 존재에 접근하는 한 방식은 되겠지만 결코 그것을 움켜쥘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익명의 공간은 관음의 충동과 함께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역시 갈망하게 한다. 어설픈 시선의 부역과 휴대폰 동영상의 기록은 지하철 공간을 넘어 사이버 공간 속으로 확산돼 'OO녀''OO남'들을 심심찮게 탄생시켜왔고, 그 OO녀들이 몇 분마다 열리는 '탈출구'를 통해 캄캄한 어둠의 공간, 더 아득한 익명의 군중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뜨거운 뉴스로 소비된다. 어쩌면 그들이 범한 일탈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상의 다양한 공간에서 드물지 않게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들이 엽기 패륜의 화신인 양 여론의 몰매 앞에 내몰리는 데는, 공간의 익명성과 이야기의 갈증에 부추겨진 다중의 공격성도 기여한다. 명분을 등에 업고 단죄에 나선 익명의 무리는 실명의 개별자보다 훨씬 쉽게 가혹해지고, 심지어 야비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왜 하필 다중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그러느냐는 따짐과 함께 왜 하필 지하철 안이면 더 안 되느냐는 질문을 우리는 던져야 한다. 또 그들이 공원이나 길거리, 버스 대합실과 달리 거의 늘, 어쩔 수 없이, 타인을 사랑할 수도 살해할 수도 있는 거리 안의 타인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동물에게는 생식과 생존을 위한 공간 유지 법칙과 '도주거리'라는 게 있어서, 낯선 존재가 어느 정도 접근할 때까지 잠자코 있다가 경계를 넘어 다가오면 달아난다고 한다. 도주 기회를 얻지 못한 동물은 침입자가 아무리 강한 존재여도 어쩔 수 없이 공격하는데, 이 때의 도주거리는 '치명적 거리'라 불린다. 무리를 짓는 동물들조차 집단 내에서 '개인적 거리'를 유지하는데 이 거리를 홀은 '생명체를 에워싸는 보이지 않는 거품' '확장된 육체'로 묘사하고, 거품이 훼손되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공격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경우 진화(혹은 문명화) 과정을 통해 도주거리나 개인적 거리의 인성 지배력은 약화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동물이어서 그 영향력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지하철 전동차 안은, 어중간한 오후 시간대가 아닌 한 거의 늘, 엘보 디스턴스- 에드워드 홀은 이 거리를 사랑을 나누고 맞붙어 싸우고 위로하거나 보호해주는 행위가 가능한 '밀접거리(0~18인치)'라 칭했다- 안에서 타인을 만나는 공감각적 공간이다. 요컨대 의지만 있다면 상대의 체온과 숨소리, 체취 등을 통해 거의 전면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교감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시험의 공간이다. 개입의 실천 못지않게 무관심의 배려도 소중하다는 것, 소통의 가치는 철저한 고독을 품위 있게 지탱할 수 있을 때 더 온전해진다는 것도 지하철 공간은 새삼 환기시킨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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