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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서적 지정 "기본권 침해 아니다"/ 법원 판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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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서적 지정 "기본권 침해 아니다"/ 법원 판결 논란

입력
2012.05.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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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종의 도서를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2008년 국방부의 조치는 기본권 침해이고 저자ㆍ출판사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책들의 저자와 출판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31일 모두 "이유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책의 어떤 내용이 불온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법원이 '뜨거운 감자'를 피해감으로써 불온서적이라는 판단 자체가 타당한지,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각 도서의 불온성을 판단해 달라'는 원고의 요청에 대해 재판에서 다룰 중점 사안이 아니라며 이와 관련한 원고의 주장은 참고자료로만 제출받았다. 불온서적 지정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헌법 21조2항의 사전검열 금지는 실질적으로 행정권이 주체가 돼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를 해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것인데, 시중에 유통되는 서적을 불온도서로 지정하고 군 내 반입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하달한 조치로 언론ㆍ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이 제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법원이 '불온'이라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로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행정부의 행위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소송의 법률대리인인 김현임 변호사는 "2년 전 헌법재판소도 소수의견이기는 하지만 '불온'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의견을 냈다"며 "국방부장관이 북한 찬양, 반정부, 반미 등을 이유로 불온서적을 지정했다는데, 개별 서적이 정말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전혀 없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인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도 "군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기본권 침해로까지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법원이 기본권에 대해 일반론적인 판단만 하고 개별 책의 불온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여 구체적 심리를 회피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불온서적 지정이 저자 및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불온서적 목록을 장병에게 공지하고 정신교육을 시행하며, 반입 여부 일제 점검 및 통제를 하도록 한 공문 내용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 저자ㆍ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학계와 출판계는 이에 대해서도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책들의 저자 및 출판사의 간접 피해를 인정하지 않은 소극적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는 "국방부의 행위는 출판물의 유통을 실질적으로 위축시킬 여지가 충분한데도 판결에 이런 부분을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며 "정부 조치에 따라 이들 책이 학교 교재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위축을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면에서 사려 깊지 못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국 대법원도 1960년대 간행물윤리위가 청소년 유해 서적을 지정해 서적도매상들에게 통보한 '밴텀 북스 사건'에서 저자와 출판사의 활동을 불필요하게 위축시킨 행위로 보고 손해배상 판결을 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김선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또 재판부가 국방부의 조치는 장관의 재량권 일탈이 아니라고 판단한 데 대해 "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나 제한에 대해 구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며 "국민 인권과 소수자 보호 등 법원의 본래 역할에 어긋나는 판결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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