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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벽을 허물다/ <하> 유리 천장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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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벽을 허물다/ <하> 유리 천장을 깬다

입력
2012.05.3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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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자(54) 농협은행 부산 영업본부장은 농협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1979년 여상을 졸업한 그는 농협에서 창구영업부터 시작해 바닥을 다지며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마쳤고, 2003년 농협 최초 여성 사무소장에 올랐다. 지난해엔 '존경하는 상사상(像)'에 선정될 정도로 리더십을 인정받았고, 드디어 올 초 농협 16개 지역본부 '홍일점' 영업본부장에 올랐다.

이애리(49) 기업은행 마장동지점 과장은 고졸 계약직으로 시작해 지난해 정규직 과장이 됐다. 계약직이 정규직 과장이 된 건 기업은행에선 처음이다. 그는 2002년 타 은행에서 해고된 후 같은 해 기업은행에 계약직으로 재입사하는 시련을 딛고 4년 만에 정규직원이 됐다. 뿐만 아니라 통상 7년이 걸리는 과장 승진도 5년 반 만에 성취했다. 승진시험 3개 과목을 한번의 실패 없이 통과한 덕이다.

둘은 모두 대졸, 남성 중심의 금융회사에서 고졸, 여성이라는 약점을 오직 실력과 열정으로 이겨냈다. 그러나 둘에게 주어진 '최초'라는 훈장은 어쩌면 이들이 일상에서 지긋지긋하게 맞닥뜨려야 했던 '유리 천장'의 존재가 그만큼 단단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성별, 학력의 벽을 깬 소수의 성공담은 그만큼 짙은 그림자를 뒤에 숨기고 있는 법이다. 다행히 "자신의 경력과 직무는 차별과 우대 없이 객관적인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결정한다"(농협은행), "누구나 열심히 하면 은행장까지 오를 수 있다"(기업은행) 등의 원칙이 점점 더 세를 얻으면서 금융권의 유리 천장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보다 많은 우 본부장과 이 과장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사실 금융회사는 대부분 여성인력이 다수를 차지하는데도 그간 승진과 인사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융회사들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배려와 지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여성인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여성이 미래 조직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취임 초부터 '여성 이니셔티브 추진'을 경영목표 중 하나로 내세웠다. 덕분에 여성 본부장이 4명으로 늘었고, 부유층 대상 자산관리전문(PB)점포 및 주요 전략점포에 여성들이 책임자로 임명됐다.

서 행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여성 고위 임원 숫자 같은 표면적 목표보다 향후 조직의 리더로 성장해나갈 여성인재 풀(Pool)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밀어붙였다. 이는 '여성관리자 점프 업' 프로그램(교육 및 경력관리), '신한 맘-프로(Mom-Pro)' 제도(육아를 위한 선택근무) 등의 결실로 이어졌다.

씨티은행은 다양성위원회(능력에 따른 평가)와 다양한 근무형태로 여성들을 배려하고 있다. 또 여성위원회를 주축으로 진행하는 여성지도자 특강, 멘토링 프로그램 등은 보다 많은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하나은행의 자랑은 2003년 설립한 직장보육시설 푸르니어린이집이다. 직원들의 육아부담을 덜어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은행은 2009년부터 PB사관학교를 운영해 여성직원들의 경력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금융권의 고졸 채용이 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하고 있다. 대부분 고졸은 계약직으로 입사하기 때문에 이들이 낙오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선배들과의 교류를 강화하고, 업무습득 및 학업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국민은행의 대학 등록금 50% 지원, 우리은행의 'WOORI 언니'와 '신입행원 카페'(멘토링), 대한생명의 사내대학 학사학위 취득 지원, 삼성증권의 직무전환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대우증권 현대증권 삼성카드 등도 유사한 제도 도입을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금융권에서 유리 천장이 깨지는 그날은 아마도 고졸과 여성이 임원에 올랐다는 사실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날일 것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강아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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