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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후진국형 전력소비 이대로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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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후진국형 전력소비 이대로 둘 건가

입력
2012.05.3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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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5일 사상 초유의 순환정전이 발생하자 언론들은 전국적 블랙아웃이라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절약이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사태 이후 최대 소비전력은 되레 6,728만㎾에서 6,740만㎾로 12만㎾ 증가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근본 원인을 따지지 않은 채 올 여름 전력수급 문제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난 5월 2일 오후 3시 예비전력은 422㎿를 기록했다. 전력비상 상황 직전의 단계다. 1년 전의 예비전력 939㎿ 대비 55%나 하락한 수치다. 전력수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한국전력이 전국사업소를 통해 사전 약정된 고객에 전력사용 감축을 긴급 요청해 급한 불은 껐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통상 4~5월은 예비율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전력수요가 안정적이지만 올해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예년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전소 불시사고까지 이어지면서 공급능력이 떨어져 예비율은 7~8% 수준에 그친다. 이에 정부는 에너지 다소비업종 기업에 과도한 냉방을 자제하고 피크 시간대를 피해 조업 일정을 조정하는 등의 협조를 요청했다. 공급능력을 높이기 위해 5~6월 예정됐던 화력발전소 9곳의 정비도 하계 피크기간 이후로 늦추기로 했다. 9ㆍ15 순환 정전의 악몽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현재 전력시장으로부터 ㎾h당 105.94원에 전력을 구입해 98.44원에 판매하고 있다. 국제 연료가격 상승과 환율 탓에 구입비는 높아졌지만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전기요금은 여전히 낮은 수순이다. 한전 누적적자의 원인이기도 한데, 공기업의 특성상 결국엔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가스가격은 63%, 등유는 139%, 경유는 158% 올랐다. 이에 경유나 등유의 소비는 현저히 감소하고 있지만 같은 기간 가격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낮았던(21%) 전력의 소비량은 63% 늘었다. 유류나 가스로 난방을 하기보다는 전열기로 난방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이유다. 2008년 이후 국제 유가가 고공 행진하면서 이러한 에너지 소비행태는 고착화하는 분위기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전력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전력소비량은 무려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에 달한다. 경제 수준은 G7인데 에너지소비 행태는 G70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전력소비 증가율에 대응하자면 발전소 추가 건설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원자력은 1호기에 약 3조원, 석탄은 1.3조원, LNG는 0.6조원의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전기요금 인상으로 연결되기 마련인데, 과소비 행태가 고쳐지지 않는 한 전력수급의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일본을 보자. 일본은 지난해 전년 대비 절전 목표를 15%로 잡고 국가적인 절약운동을 벌여 21% 절전을 달성했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절전운동 참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절전으로 노인들의 열사병이 속출하자, 노인이 있는 가정의 에어컨 사용 촉구 방송을 내보낼 정도였다.

일본의 전기요금은 우리보다 2배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계약전력이 50㎾ 이상인 고객에 대해 요금을 17% 인상을 단행했다. 절전운동 뿐만 아니라 가격기능을 더욱 강화해 절약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9ㆍ15 정전으로 시내 곳곳에 신호등이 꺼지는 바람에 차량과 보행자가 길에 엉키고 멈춰선 엘리베이터 안에서 2,000여명의 시민들이 암흑 속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했던 '지옥'을 경험하고도 좀처럼 전력소비가 줄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절약만 강조하는 캠페인은 공허한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소비자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패턴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전기가격에 경고의 메시지를 담아 갈 필요가 있다. 우리의 '후진국형 전력소비행태'에서 비롯된 공포를 후세대에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박희천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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