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당뇨병을 앓고 있는 직장인 최모(44)씨는 뭘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국수 한 번 입에 댈라치면 식구들이 큰일 날 것처럼 손사래를 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블랙 아니면 주위 사람들이 한사코 말린다. 맵고 짠 음식 안 좋대서 반찬을 싱겁게 만들다 보니 오히려 많이 먹게 되기도 한다. 당뇨병 안 앓아본 사람은 모른다.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암 말고 가족력의 영향이 크다고 꼽히는 대표적인 병이 바로 당뇨병이다. 부모 중 한 명이 당뇨병이면 자녀도 당뇨병이 생길 확률이 25%나 된다. 부모 둘 다 당뇨병이면 자녀의 발병 확률은 50%까지 치솟는다. 최씨의 어머니도 당뇨병이다.
"걱정해주는 얘기도 스트레스"
"조금만 먹어야 하는데, 이건 먹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지키기가 힘들어요. 주위 사람들 잔소리도 제 생각해서 그러는 걸 잘 알죠. 당뇨병이면 단 음식이나 열량 높은 음식, 소금기 많은 음식 제한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걱정해주는 거 알면서도 이래라 저래라 소리 듣기 싫을 때가 적잖이 있어요."
같은 병을 앓는 어머니와도 그래서 자주 부딪힌다. 집에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몸무게도 적게 나가는 어머니는 식사가 규칙적이고 인슐린 자가주사도 꼬박꼬박 맞으니 직장에 나가는 최씨에 비해 혈당 조절이 잘 되는 편이다. 어머니 장모(74)씨는 "(딸에게)하루에도 몇 번씩 주사 맞았냐, 밥은 어떻게 했냐 잔소리하게 되니 속상하다"며 한숨지었다.
최씨와 장씨의 주치의인 박철영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도 "어머니는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며 "당뇨병이 생긴 지도 더 오래 된 최씨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임신기간 중에 생긴 당뇨병이 출산 후 빠르게 일반적인 성인 당뇨병으로 발전한 경우다. 출산 후 3개월 만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임신 중 몸무게가 25kg나 불었는데, 출산 후 거의 빠지질 않았어요. 임신성 당뇨병이 생겼을 때 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애 낳고 나면 괜찮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박 교수는 "임신성 당뇨병으로 진단 받은 국내 여성의 약 50%가 4년 뒤 일반적인 당뇨병으로 진행됐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며 "(최씨가)임신성 당뇨병 초기부터 혈당 조절 등 관리를 했다면 당뇨병 발병 시점을 훨씬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신성 당뇨병과 함께 고령 임신, 임신 전 비만 역시 당뇨병을 일으키는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김치에 밥과 국=혈당 상승
어머니를 비롯한 최씨의 친정 식구들은 대부분 육류보다는 국수나 라면 같은 밀가루음식과 장아찌, 국, 김치를 좋아한다. 혈당(피 속에 들어 있는 포도당) 수치를 올리는 대표적인 음식들이다. 이들 음식을 많이 먹는 식습관에 운동 부족, 몸무게 증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당뇨병이 생긴다는 게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혈당 수치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정 기간 동안의 평균 혈당을 확인한다. 평균 혈당이 정상치 근방에서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려면 당뇨병 환자들은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최씨와 장씨 모녀도 좋아하던 음식들을 먹는 횟수와 양을 조절하는 중이다. 식빵은 3쪽이, 삶은 국수는 1공기 반 정도가 밥 1공기와 열량이 같다. 장아찌나 국, 김치는 소금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적게 먹어야 한다. 밥 한 끼 먹을 때 김치는 두세 점 정도만, 국은 건더기 위주로 먹는 식이다.
박 교수는 "김치에 밥과 국만 먹는데 혈당 조절이 안 된다고 상담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며 "특히 여성이나 고령 환자가 많이들 잘못 생각하는 음식이 육류와 과일"이라고 지적했다. 고기나 생선은 무조건 안 먹는 게 좋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뇨병으로 입원하면 거의 끼니마다 생선이나 고기가 나온다. 영양 보충을 위해 단백질이 필요해서다.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 밥을 더 먹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박 교수는 "한국인의 식사 패턴은 대부분 아침 거르고 점심 12시, 저녁 7시라 점심과 저녁 식사 간격이 너무 벌어진다"며 "과일 섭취에 딱 좋은 시점은 오후 4, 5시쯤"이라고 조언했다.
세 살 습관 여든까지
식단 조절이 사실 말은 쉽지만 막상 해보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생활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그래서 식구들이 함께 식단 조절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박 교수는 "남편이 당뇨병이면 주부들이 남편용 반찬을 채소 위주로 따로 만들고, 아이들은 원래 습관대로 먹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면 환자가 맛이 없고 조절 의욕도 떨어지는 데다 아이들 역시 당뇨병 위험에 계속 노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당뇨병이면 아이들 역시 식단을 공유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당뇨병 예방의 최우선은 체중 관리다. 박 교수는 자킵?모르게 몸무게가 확 느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여성은 첫 생리와 임신, 폐경, 남성은 입사와 결혼이다. 이 시기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 "당뇨병 진단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며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건강한 생활습관을 공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동기획 강북삼성병원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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