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남자가 바지를 내리고 달려드는데 대낮인데도 정말 끔찍했어요."
직장인 A(30ㆍ여)씨는 지난 6일 오후 4시쯤 인적이 드문 서울 강북구 한 공원에서 당한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국부를 내놓은 채 끈질기게 달라붙던 40대 남성은 "이 XX야, 가만두지 않겠다"며 폭력을 휘두를 듯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위험을 느낀 A씨가 휴대폰카메라로 촬영을 시작하자 그제서야 바지를 추켜올리며 줄행랑을 쳤다.
이날 A씨의 신고를 받은 서울 강북경찰서 주취폭력전담팀(주폭팀)은 현장 동영상을 통해 그간 주취 폭력으로 자주 경찰서를 들락거려온 박모(46)씨임을 확인하고 추가 피해자를 확보한 뒤 부녀자 추행혐의로 29일 구속했다. 박씨는 1999년 11월 이후 음주폭력, 성추행 등 입건돼 처벌받은 건만 10건이나 됐다. 만취상태의 아들에 폭행을 당했던 박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술만 취하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조사 받을 때 정신지체 2급 진단서를 가지고 있으니 처벌할 테면 하라며 관련 서류를 들이대기까지 했고 과거 이 점 때문에 벌금 등 가벼운 형이 내려진 것으로 안다"며 "그간 박씨의 음주폭력이나 성추행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대부분 계도차원에서 훈방조치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10일 취임과 함께 '주취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이른바 음주폭력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술 먹고 한 행동'에 대한 사회의 관대한 인식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벼운 법적 잣대를 들이댔지만 그 이면에 숨은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14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구속된 이모(47)씨는 지난해부터 주변 영세상인과 지역 주민센터 등을 대상으로 만취상태에서 음주폭행 및 모욕행위를 한 횟수가 확인된 것만 69차례에 달했다. 평소 서울 영등포시장 일대에서 상습적인 음주폭력을 휘두르던 강모(52)씨는 22일 술에 취해 포장마차에서 손님과 시비를 벌이다 우발적 살인을 저질러 구속되기도 했다.
주취폭력과의 전쟁 이후 32명을 구속시키는 등 경찰의 강력한 단속과 엄한 법 적용이 잇따르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던 피해 주민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58)씨는 "예전에는 신고를 해도 매번 다시 돌아와서 가게를 깨부수다 보니 보복이 두려워서 속앓이를 했다"며 "이제 한동안 그런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이모(63)씨는 "구속을 시켜서라도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해야 주민도 피해를 보지 않고 피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음주폭력의 특성상 엄한 처벌로만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취폭력 피의자 대부분이 알코올중독자로 치료 없이는 실형을 살더라도 음주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과거 범죄 전과를 근거로 가중처벌하는 식으로 흐르는 분위기도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경찰은 전과기록을 검토한 결과 주폭에 해당될 수 있는 전과자를 900명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주민 참여연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알코올중독은 개인의 인신구속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경찰이 범죄에 대한 처벌은 엄하게 하되 치료와 처벌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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