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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5월 31일] 그들은 왜 복직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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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5월 31일] 그들은 왜 복직을 원하는가

입력
2012.05.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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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에 정리해고 문제가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 예전에 노사갈등은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고, 주로 '단체협약'이라는 틀 안에서 해결되었다. 그 같은 제도적 문제 해결 방식은 노동력이 기업의 성장에 중심적 요소로 간주되었을 때, 나아가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교섭력과 정치력에 기대어 자본의 독주를 제어할 수 있었을 때에나 통용되던 것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노사갈등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제 많은 기업들은 노동력에 의존하지 않고 합병과 매각,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 등을 통해 생존과 성장을 도모한다. 이런 말들은 번지르르하게 들리지만 그 실체는 주주, 채권단 같은 소수 자본가들이 자의적으로 노동자의 운명을 결정해버리는 일이다. 멋진 양복을 입은 이들이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많은 노동자들의 인간적 삶을 파괴해버리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는 식이다. 이렇게 일방적인 방식으로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가 양산되는 것이다.

현재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기륭전자, 재능교육, GM대우, 코오롱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진행 중인 노동자들의 싸움은 단체협약을 둘러싼 사측과의 갈등이 아니다. 예전처럼 비대칭적이나마 교섭력과 정치력을 가지고 있던 노조가 사측에 대해 임금상승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던 그런 싸움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는 노사갈등이라는 표현조차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교섭력과 정치력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권과 인간적 존엄까지 박탈당한 노동자들, 즉 모든 것을 빼앗긴 이들이 모든 것을 가진 자들에게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것이 이 싸움의 본질이다.

2009년 해고된 3,000명 명에 가까운 쌍용차 노동자 중에 이미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투쟁은 노동자들에게 삶 자체, 생명을 지키려는 싸움이 되었다. 더 이상 어떤 친구도, 동료도, 동지도, 가족도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싸움의 동력이 되었다. 이들은 무엇을 되찾으려 하는가? 물론 일자리이다. 이때 일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적 소득을 의미하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일자리는 그저 최소한의 보호 장치이다. 그것이 구비되었을 때, 사람들은 소득은 물론 인간적 삶의 나머지 형태들, 사회적 지위, 자존감, 일상적 행복, 자식들을 위한 미래 계획, 색다른 인생, 공동체적 유대 등을 느끼고 꿈꿀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보호 장치도 없이 일자리를 빼앗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삶의 파괴다. 죽음이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 같은 '산 죽음'으로의 전락이다. 따라서 일자리를 되찾는 싸움은 삶 전체를 되찾는 싸움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수 언론과 정치인, 노동 문제에 무관심한 시민들은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나라의 경제를 생각 안하고 자기네의 정치적 이익과 밥그릇만 생각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하기보다 어떻게든 먹고살 궁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야말로 시장 중심 사고와 상품 논리에 젖어 인간성에 대한 무지와 불경을 드러내고 있다.

칼 폴라니는 인간의 이익을 소득으로만 따지는 견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인간을 "금전적 소득자일 뿐만 아니라 이웃이기도 하고, 전문성을 가진 직업인이기도 하고, 소비자, 보호자, 통근자, 스포츠 애호가, 등산 애호가, 정원사, 어머니, 연인 등의 무수한 존재 형태"라고 정의한다. 이런 이유로 쌍용차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분향소가 설치된 대한문 앞에는 시위 구호만 있지 않다. 거기서는 꽃과 먹을거리가 넘치고 미술작품이 전시되고 밤에는 시가 낭송되고 음악과 춤의 무대가 펼쳐지고 새벽까지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그곳에서 노동자, 예술가, 직장인, 대학생, 장애인들은 삶의 풍요로움을 복원시키려는 집단적 노력을 수행한다. 그들은 그렇게 정리해고 철폐 투쟁이 일자리로의 복귀를 넘어서 더 낫고 더 풍부한 인간성을 전망하고 구현하는 일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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