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남긴 상속재산을 둘러싼 형제 간의 법정 다툼이 드디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부장 서창원)는 30일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81) 전 제일비료 회장, 차녀 이숙희(77)씨, 손자인 고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의 부인 최선희(45)씨가 고 이 회장의 차남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인도 청구소송 첫 공판을 열었다.
첫 변론기일인 이날 재판은 소송 당사자들 대신 변호인들만 참석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중법정에서 진행됐지만 삼성, CJ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몰려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재판부는 "방청을 편안히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지만 재판부가 사용할 수 있는 법정 가운데 이곳이 가장 큰 법정이니 이해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양측은 예상대로 상속 등에 대한 권리 행사가 가능한 기간을 가리키는 '제척기간'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민법 999조에 따르면 상속회복 청구권은 상속권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상속권의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하면 소멸하도록 돼있다.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이병철 회장 사망 후 차명주식의 명의가 이건희 회장에게 이전된 시점이 2008년 12월이기 때문에 제척기간 10년을 지나지 않은 게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건희 회장 측은 "삼성생명, 삼성전자 상속 주식을 삼성 재무팀이 25년간 관리해 왔고 아무런 분쟁이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척기간이 지났다"고 반박했다.
이맹희 회장 측이 상속권 침해 사실을 안 지 3년을 지났는지 여부를 놓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이맹희 회장 측은 "지난해 6월쯤 삼성 측이 CJ 재무팀장에게 국세청에서 온'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 서류에 사인해줄 것을 요구했을 때 이병철 회장이 남긴 차명주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 측은 이에 대해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검 결과 발표 당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주식 내용이 공표됐기 때문에 이맹희 전 회장 측이 상속권 침해 사실을 안 지 3년이 지났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제척기간이 일단 쟁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증거조사는 양측의 변론을 더 본 후에 법원 직권으로 결정할 수 있다"며 "양측은 1987년 삼성생명, 삼성전자 주권발행 여부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첫 공판을 끝냈다.
삼성가 상속재산 소송은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차명 보유해 온 삼성생명 주식 324만4,800주는 형제들에게 상속된 것이므로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현재 소송가액만 1조원이 넘고, 1998년 제3자 명의로 신탁됐다가 에버랜드로 편입된 삼성생명 주식 344만7,600주가 추후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규모가 3조원대 이상으로 커질 수도 있다. 이는 삼성그룹의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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