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31일, 20세기 대표적인 여성작가 루이스 부르주아가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0대 중반 화단에 등장해 71세에 뉴욕현대미술관에서의 회고전으로 국제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대기만성형 작가. 혹자는 페미니즘 아티스트라 부르지만 그는 이런 타이틀을 한사코 거부했다.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국내에는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야외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는 비정상적인 가정사에서 비롯된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가정교사와 아버지의 부적절한 관계로 깊은 내상을 입었다. 훗날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어머니를 향한 연민은 조각, 설치미술, 드로잉 등의 예술 언어로 변주된다. 그는 이 과정을 '치유이자 구원'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작품 안에 원초적인 공포와 폭력성, 에로티시즘과 모성이 뒤엉켜 흐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2주기에 즈음해 초기 작품으로 이뤄진 개인전 '저명인사(personages)'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제3관에서 열리고 있다. 1949년 첫 조각 전시에 선보인 13점의 추상 인물상과 잘 알려진 설치작품 '밀실(Cell)' 연작 중 1점이 출품됐다.
남근 혹은 바늘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막대 형상의 추상 인물상들은 프랑스인인 그가 남편을 따라 뉴욕에 정착한 후 맨해튼 아파트 옥상을 아틀리에 삼아 작업한 것이다. 프랑스에 남겨둔 가족과 지인의 모습을 담은 조각들에는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의 고독감이 배어있다. 누군가는 빵을 들고 가는 모습으로 남았고, 불편한 관계이던 한 지인은 가슴팍에 여러 개의 못이 꽂혔다. 허리춤에 작은 조각 여러 개가 달린 '꾸러미를 든 여인'(woman with packagesㆍ1949)은 아이를 안고 가는 작가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해 10여점을 남긴 '밀실' 연작 중 2006년에 제작된 최근작도 선보였다. 밀폐된 방 혹은 나만의 방으로 억압과 보호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낸 원형의 쇠 그물망 안에 여러 오브제를 설치한 작품. 길고 짧은 거즈와 거꾸로 매달린 헝겊 인형, 대리석 조각 등은 상처, 욕망, 고통 등을 은유한다. 6월 29일까지. (02)735-8449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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