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착증 환자에 대해 처음 적용되는 이른바 '화학적 거세'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법무부가 최근 아동 성범죄 전과 4범 박모(45)씨에게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 명령을 내리면서 실효성 논란이 뜨겁다. 보호감호 처분 상태인 박씨는 7월 가출소 후 3년간 석 달에 한 번씩 치료감호소에서 성충동 억제 약물을 투여 받게 된다.
정부는 관련 법률이 만들어 진 뒤 처음 시행되는 화학적 거세인데다, 일부 선진국의 성공 사례를 들어 약물치료 효과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실효성 여부는 두고봐야 하며, 오히려 인권침해나 약물 부작용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아동 대상 성범죄는 성호르몬의 문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화학적 거세는 아동 성범죄를 막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아동 성범죄자들은 공감 능력 부족, 낮은 자존감, 감정 통제 미숙 등의 공통점이 있다"며 "재범을 막기 위해선 여러 문제점이 있는 약물치료 보다는 인지행동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화학적 거세는 아동 성범죄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최영득 연세대 의대 교수는 "성도착증 환자 치료때 정신 및 약물치료의 복합요법은 정신치료만 단독으로 진행할 때보다 성공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 전 검사 및 추적 검사를 통해 약물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면 화학적 거세가 성도착증의 재범률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 반대
"성범죄엔 성호르몬 문제外 복합 요인 작용…물리적 통제보다 심리치료·교육 중점 둬야"
아동 대상 성범죄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으로 화학적 약물치료가 도입된 후 첫 번째 화학적 약물치료 명령이 내려졌다. 출소 후 거주지에 살면서 3개월에 한 번씩 약물 투여를 하고 3년간 보호관찰을 받으며 전자발찌를 착용해야 한다. 인지행동과 심리 프로그램 등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했다.
화학적 약물치료 도입은 출발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인권침해, 약물 부작용, 예산 남용, 실질적인 범죄 예방 효과가 있냐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성범죄자에게 효과적일 수 있지만 국가의 예산을 들여서 법으로 강제할 만큼 성범죄 예방 정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가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논란에 부딪히자 정부는 화학적 약물치료의 도입에 대한 우려를 줄이기 위해 치료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제한적인 경우에만 실시하며, 가석방 요건이 되고, 본인이 동의하면 본인 비용 부담으로 화학적 약물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 국가 예산 낭비라는 비판에서도 벗어나려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교도소와 보호관찰소의 체계적인 교화과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된 화학적 약물치료가 적절하냐는 것과 성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 가에 대한 분석과 깊이 있는 논의 없이 인권침해, 약물 부작용, 예산낭비 등의 문제점이 많아 보이는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전히 성범죄는 조절하기 힘든 성충동에 의해 발생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아동대상 성범죄가 성호르몬의 문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성범죄자들은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낮으며, 양식과 기술이 부족하고, 정서와 행동을 통제하는 데 문제가 있으며 낮은 수준의 친밀감과 정서적 외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역기능적 애착방식을 갖고 있다. 또한 많은 성범죄자들은 분노 관리와 약물 남용 등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기인하고 있는 뿌리깊은 인식과 습관, 행동의 교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광범위한 문제를 갖고 있는 성범죄자를 다루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다.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성범죄자의 재범 방지에 가장 효과적인 것인 인지행동치료다. 인지행동치료 등 교정프로그램을 잘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화학적 약물치료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한 나라들은 재범률이 낮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지행동치료 등 교정치료프로그램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화학적 약물치료만으로는 그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범죄자 재범방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캐나다는 아동대상 성범죄자에게 높은 형량을 구형하고 꾸준히 치료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치료 과정에서도 변화가 없다면 계속 수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치료프로그램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면 심사를 통해 석방하고 교도소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 지역사회에서도 이어져서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제도는 이는 성범죄자 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자들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되며 모든 재소자들이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성범죄자도 성범죄 사실을 다른 재소자들 모르게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교도소와 보호관찰소에서 재범방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꾸준히 진행하기 어렵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연 몇 회로 제한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성범죄자들을 모아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교정치료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려면 매주 정기적으로 적어도 12주 이상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수감되는 순간부터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어야 하며,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도 치료는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치료프로그램이 중심이 되어 안정적으로 실시되고 이를 돕기 위해 화학적 약물치료와 전자발찌 제도가 병행된다면 재범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신중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집행해야 함에도 여전히 물리적인 통제 정책을 중시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과 상담 치료 예산을 중심으로 배치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기를 바란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
● 찬성
"성적일탈은 정신질환…의학치료 필요…과성욕치료제 등 재범률 감소효과 기대"
9세기 후반 독일의 정신의학자 크라프 에빙이 (Psychopathia Sexualis)를 출판하기 전 성적일탈은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성적일탈이 죄스런 타락보다는 의학적 상태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고, 세계보건기구 및 미국 정신의학회서도 이를 공히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게 됐다.
1892년 스위스에서 과성욕 환자 대상으로 치료목적의 외과적 거세가 처음 시행됐다. 20세기에 미국 및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스위스 등의 유럽 국가에서 성범죄자에 대해 수술적으로 거세가 시행됐고 성범죄의 재범을 현저히 감소시켰으나, 현재 대부분 폐지됐다. 1940년대까지 에스트로겐으로 성범죄자를 치료하려는 몇몇 시도가 있었으나, 여성화 부작용으로 인해 1960년대에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는 성욕억제치료로 대치됐다. 최근엔 성선자극호르몬길항제가 성도착증의 치료 약제로 주목 받고 있으며, 주사제를 사용할 경우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매우 낮은 수치까지 감소시킬 수 있으며, 재범률을 감소시켰다는 연구가 보고됐다.
국내에서도 2010년 6월 29일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비정상적 성적충동을 가진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통제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과성욕 환자에 사용되고 있는 약제로는 MPA(medroxyprogesterone acetate), CPA(cyproterone acetate) 및 성선자극호르몬길항제 등이 있다. MPA는 주로 미국에서 사용됐고, CPA는 영국, 유럽, 캐나다 등지에서 선호되어 왔다. 최근엔 보다 강력한 효과를 보이며, 심혈관계 부작용이 적은 성선자극호르몬길항제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유럽의 연구 결과를 보면, 양측 고환절제술을 받은 경우 재범률 2.5~7.5%로 알려져 있으며,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의 재범률은 60~84%로 알려져 있다. 세 가지 약제 모두 성충동을 억제하고, 재범률을 감소시키는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성선자극호르몬길항제는 수술적 거세에 해당하는 양측 고환절제술에 준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성도착증의 치료에 있어서 정신 및 약물치료 복합요법은 정신치료 단독에 비해 치료성공률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물론 약물치료의 단점도 존재한다. 남성호르몬 억제요법의 효과를 규정할 수 있는 판단 기준 및 진단 도구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해결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설문지를 통한 자가보고 및 인지-행동 정신치료 과정에서의 의료진과의 면담은 주관적이며,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다. 혈청 테스토스테론 측정 및 음경 체적변동기록법 역시 객관적 자료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남성호르몬이 충분히 억제가 된 상태에서도 발기능이 유지되며, 성도착적 증세가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암시장 또는 다른 경로를 통해 남성호르몬 제제를 투약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성선자극호르몬길항제의 경우 이미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많은 임상적 경험이 축적되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치료 전 검사 및 추적 검사를 시행함으로써 예상 가능한 약물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약제의 부작용 중의 하나인 골밀도 감소에 대해선 충분한 주의 및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립선암 환자에 준하는 추적검사를 시행하고, 약물부작용과 치료약제의 관련성 평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전문가 집단이 객관적으로 인과관계를 판정한다면, 성도착증의 치료와 재범률을 감소시키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영득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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