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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그래, 핑계가 됩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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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그래, 핑계가 됩디까?

입력
2012.05.2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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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코앞으로 닥친 모양이다. 아침 저녁 카디건 없이는 춥다며 닭살 긁는 나라지만 시절은 아니 그러한 듯, 하루에도 몇 통씩 경고의 메일이 날아드니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호루라기라는 얘기다. 쫄티를 입어야 하는데 네 뱃살 어쩔래? 샌들을 신어야 하는데 네 맨발 어쩔래? 자외선에 쪼여야 하는데 네 피부 어쩔래?

아, 어쩌긴 이대로 살다 죽어야지 별 수 있남. 무심한 듯 세상 다 살아본 사람처럼 말은 그렇게 한다지만 막상 뒤로는 온갖 다이어트 비법과 몸매 유지 요령에 팔랑팔랑 팔랑 귀를 자랑하는 나다. 오죽하면 시에도 썼겠는가. 갑작스레 펑퍼짐하게 퍼진 엉덩이로 말미암아 작아져버린 팬티를 입고 쪼인 채로 걸을 때만큼 우울한 날이 없다고.

그리하여 몇 번인가 다이어트용 다이어리를 사보기도 했지. 3일 동안 오이만 먹고 3킬로그램이 빠졌다는 친구의 꾐에 오이 포대를 양손에 든 채 집으로 향한 지 이틀째였던가, 전화를 끊자마자 부리나케 동네 앞 치킨 가게로 뛰는 내가 있었다.

부당한 이유로 회사에서 잘렸다며 꺼이꺼이 울어대는 친구의 호출이었다지만 내겐 닭의 부름을 받잡은 기억밖에는 없었으니까. 닭을 버무린 매운 양념까지 싹싹 숟가락으로 긁어 먹고 집에 와 던져버린 다이어리가 어디 한두 개였겠는가. 다만 그때마다 내겐 핑계가 아닌 명분이란 게 존재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짓궂기도 하지. 아직 나 비키니 한 번을 못 입게 했다니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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