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에겐 인터넷ㆍ모바일 게임이 옛날 호환(虎患), 마마 보다 더 무섭다. 오죽하면 학부모의 62%가 자녀들의 PC 사용에서 음란물보다 게임중독을 더 걱정한다는 결과가 나왔을까. 개탄스러운 건 게임업계는 물론이고 심지어 정부부처조차 이런 걱정을 은근슬쩍 지나친 호들갑으로 호도해왔다는 사실이다.
국내 게임업계의 선두주자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1년 전 인터뷰에서 "게임업체를 고소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아들이 게임에 빠졌던 거다. 그런데 그는 그 때도 게임 문제를 병리현상으로 보는 시각엔 반대했다. 그는 "정확한 표현은 '게임중독'이 아니라 '게임 과몰입'이다. 약물중독하곤 다르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게임 과몰입을 관용어로 고집해왔다. 콘텐츠산업 육성의 첨병을 자처했던 문화부로서는 중독이란 표현 자체가 게임과 마약을 동일시 하는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업계의 입장에 섰던 셈이다.
문화부가 공식적으론 처음 게임중독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제 서울디지텍고교에서 열린 행사에 '게임중독 상담회'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문화부 관계자는 여전히 "정책 기조가 변한 게 아니라, 용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이런 엉거주춤한 입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에 불과하다. 게임중독이라고 해야 마땅한 병리현상은 분명히 존재하고, 따라서 게임 정책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
부부가 게임에 빠져 신생아를 굶겨 죽였다는 식의 극단적 사례까지 재론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건 인터넷ㆍ모바일게임의 일반적 중독성이다. 굳이 통계를 인용할 것도 없다. 주변만 살펴봐도 게임에 얽매이지 않은 청소년이 거의 없다. 일주일 2시간 정도는 약과다. 매일 한두 시간을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금단현상을 보이는 아들 딸들이 숱하다. 끝없는 게임 아이템 이벤트도 청소년들을 게임 앞에 붙잡아 두는 교묘한 족쇄다.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최근 "강렬한 게임 자극은 뇌 쾌락중추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도록 해 결국 도파민 수용체가 줄어들게 만든다"며 "그 결과 일상적인 즐거움을 못 느끼게 되고, 심해지면 게임을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서 하게 되는 상태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는 "게임중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알코올이나 마약중독과 다를 바 없다"고 단언했다.
인터넷ㆍ모바일게임의 유행은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거나,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한 변호사는 최근 "게임 규제는 청소년들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희한한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설사 그런 주장의 일리를 인정한다 해도, 게임이 청소년들로부터 스포츠와 독서로 건강하게 땀 흘리고, 천천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앗아가는 점까지 감안하면 적절한 사회적 규제의 필요성은 더욱 확실해진다.
게임 규제라는 말 자체가 암암리에 금기시되는 건 DJ 정부 이래 게임을 산업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분위기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실제 게임산업은 2010년 현재 국내 시장 규모 10조원에 이르렀으며, 10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지난해엔 2조2,000억원의 수출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게임중독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는 건 옳지 않다. 사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스포츠나 여가활동을 뒷받침하는 산업을 중점 지원할 경우 고용과 투자, 수출이나 산업연관효과 등에서 결코 게임산업 진흥 못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게임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접근이 절실하다. 누구보다도 대선 주자들이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게임을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공약을 내놓길 바란다. 수백 만 학부모의 표심은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건강이 달린 문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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