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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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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42>

입력
2012.05.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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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는 어머니 동이 어멈의 방에 찾아가서는 얘기책 읽어드릴까를 물었고 그녀도 아들이 이튿날 한양에 올라간다는 말은 듣고 있어서 이렇게 말했다.

도련님 내일 길 떠난다는데 일찍 쉬시지요.

어머니, 이젠 그 도련님 소리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큰어머니도 안 계신데 누가 뭐랄 사람도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세상 법도가……

저도 덕이도 어머니 젖 먹고 이만큼 컸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얘기책 한번 읽어드릴랍니다. 무엇이 듣고 싶으세요?

책은 말고 그냥 도련님 이야기나 해요.

그럼 제가 옛말이나 하나 해드리지요.

하고는 스스로 이야기를 엮어서 하기 시작했다.

저어 경상도 합천에 해인사라구 큰 절이 있는데요. 그 절의 공양주 스님이 주지 스님의 명을 받고 돈 백오십 냥을 가지고 남쪽 바닷가로 미역을 사러 갔답니다. 그는 길에서 한 초라한 양반이 어린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붙잡아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아이들은 고만고만한 연년생으로 보였는데 노끈으로 손목이 엮인 채 양반에게 끌려가고 있었지요. 스님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서 양반에게 물어보았지요.

저 아이들은 어떠한 애들입니까?

내가 서울서 이 고을까지 노비들 신공을 독촉하러 왔더니 노비들은 모두 죽고 아이 둘만 남았데. 그래서 장차 부려먹을까 하고 서울로 끌고 가는 길이네.

바닷가의 어린 것들이 갑자기 서울로 가서 사고무친한데, 의복과 음식을 상전댁에만 의존하자면 장차 그 배고픔과 추위를 어찌 견디오리까. 소승의 돈을 받으시고 팔고 가소서.

스님은 두 어린애를 사다가 장차 무엇에 쓰려는가?

소승은 애들을 사서 놓아주려 하옵니다. 저희들 좋을 대로 일가친척이 사는 고향에서 품이라도 팔면서 살아갈 터이지요.

스님이 돈은 얼마나 가졌는고?

모두 백오십 냥입니다.

돈은 약소하지만 뜻이 갸륵하므로 내 거절하지 못하겠네.

양반은 돈을 받고 문서를 작성한 다음 두 아이를 스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스님은 곧 속량한다는 증서를 써서 두 아이에게 쥐어주고는 놓아주었습니다.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좋아서 토끼처럼 뛰어 달아났지요. 스님은 오던 길을 빈손으로 되돌아가 주지스님에게는 중도에 돈을 잃고 돌아왔다고 했지요.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두 아이는 자라나서 각각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더랍니다. 둘 다 부지런하여 제법 근검하여 먹고살 만한 일가를 이룬 것이지요. 그들은 언제나 스님의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며 다짐을 해오곤 하였답니다. 둘이는 여장을 꾸려서 스님을 뵙자고 해인사를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말 걸음으로 이틀을 가서 새벽길을 걷는데 발에 무엇이 걸리더랍니다. 자세히 보니 글쎄 자물쇠가 채워진 궤짝이었지요.

우리가 스님께 은혜를 갚으러 가는 길에 이런 것을 얻었으니,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하늘이 우리에게 주셔서 스님의 은혜를 갚으라는 것임에 틀림없구나!

하고는 궤짝을 열어보지도 않고 말 등에 실었습니다. 해인사에 당도하여 스님의 아무개 법명을 대고 찾으니 그이가 나와서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더랍니다.

웬 사람들이 무슨 일로 나를 찾으오?

저희는 바닷가 아무 고을에 사는 사람입니다. 바로 스님이 길에서 사가지고 속량시켜준 그 애들이랍니다.

너희들이 벌써 이렇게 장성하였단 말이냐?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스님은 비로소 그 일을 알고 예전에 백오십 냥을 잃었다면서 여태껏 아무 말도 없던 스님의 착함에 더욱 기뻐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여장을 풀고 스님에게 가져온 음식을 드리고 또 궤짝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길에서 주운 것이올시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오나 생각건대 하늘이 스님께 특별히 내린 것이라 자물쇠를 따보지도 않고 삼가 스님께 바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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