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참, 그림의 독도네요"
24일 오후 경북 울릉군 독도 선착장. 해 뜨는 우리 땅 독도를 확인하려고 전국 각지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온 관광객들 틈새로 198㎝ 장신을 자랑하는 벽안(碧眼)의 방문객이 또박또박 한국속담 '그림의 떡'을 빗대 농을 던졌다. 독도 방문을 희망하는 시민들은 날로 늘어나지만 파고(波高)가 높아 힘겹게 독도 접안에 성공해도 시민들이 뭍에는 20분도 머무르지 못하고 배로 돌아와야 하거니와, 한국 정부는 반복되는 일본 정부의 항의 때문에 독도에 시설 하나를 세우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을 에둘러 한 말이다.
이 유창한 한국어의 주인공은 미국 내 대표적'한국통'으로 올 1월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를 맡아 일하고 있는 피터 벡(45)씨다. 아시아재단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증진을 추구하는 미국 비영리단체로, 한국지부는 사회과학연구소와 외교안보연구원(옛 외교연구원) 설립, 서울대 10년 개발계획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벡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지난해 일본이 2011년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에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이후 동북아역사재단이 연 국내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해 "역사적, 법적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 될 가능성은 0.1%도 없다. 계속 이러다간 일본은 왕따가 되고 만다"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한국 학계로서는 미국 학자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이런 강경한 반응을 내놓는 게 반갑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했다.
그는 본디 독도나 역사, 지리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UC 버클리 재학 시절 한국에 배낭여행을 온 계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쌓아갔다. UC 샌디에이고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7년부터 7년간 워싱턴의 한국경제연구소에서 일했다. 한국정치, 남북관계, 동북아협력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히 한일관계에 매번 찬물을 끼얹는 독도문제로도 관심이 옮아갈 수 밖에 없었다. 독도 방문은 한국생활 '7년 경력'의 그에게 작은 바람 중 하나였다. "6년 전에도 집사람이랑 꼬마를 데리고 왔다가, 파도가 심해 독도 근처까지만 갈 수 있었어요. 이번에는 운이 좋았네요."그의 아내는 한국인이다.
이번 방문은 2010년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대책을 논의하는 한미전문가 연석회의에서 벡 대표와 인연을 맺은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이명찬 연구위원이 그를 동북아역사재단과 교육과학기술부의 독도 현지 조사에 초청해 이뤄졌다.
각각 남북한(벡 대표)과 일본(이 연구위원)문제 전문가인 두 사람은 방문이 쉽지 않다는 독도에 함께 발을 디디고 나니 할말이 많아진 듯 했다. 벡 대표는 "일본이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일본에게 남은 선택은 전쟁 아니면 포기 밖에 없는데 일본에서 독도를 위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일본 국민들은 독도에 관심조차 없는데 우익 의원들이 정치적으로 이 이슈를 이용하고 분쟁지역화 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은 "시야를 조금만 더 확대해 일본이 얽혀있는 또 다른 영토분쟁,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타이) 문제만 보더라도 일본이 결국에는 독도 영유권 주장을 거둘 수 밖에 없는 것이 자명한 현실"이라고 거들었다. 한국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가 강제점유라고 주장하면 할수록, 일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중국으로부터 센카쿠열도를 빼앗길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는 조용히 저변 연구를 통해 역사적 자료들을 수집하고 학생들에게도 조용하고 냉정한 대응법을 가르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독도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일본정부의 외교청서, 방위백서의 독도 기술이나, 격해지는 일본 우익들의 외침은 여전한 고민으로 남는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해 노다 총리 외교안보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이 독도를 점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냐'고 물으니 '제로라고 본다. 대다수 일본 국민들 생각도 그럴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만 일본은 매뉴얼사회이기 때문에 일단 정부방침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방향인 이상, 정부는 계속 한국에 항의하고, 영유권 주장하는 공식문서를 만드는 일종의 실적 쌓기를 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듣던 벡 대표가 "그러니까요"하고 맞장구 치더니 "일본에 6년간 머무르면서 주제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강연에서 말미에 이 얘기를 하며 '전쟁을 할 것이냐 그럴 게 아니라면 깨끗이 독도를 포기하고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라'고 말을 했는데 일본 정부가 계속 희망 없는 무의미한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이제는 포기했다"며 웃었다.
두 사람을 포함한 현지 조사단은 짧은 독도 방문의 아쉬움을 달래며, 울릉도에서 이틀간 머무르며 독도 교육 강화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서는 "무조건 독도에 관한 주입식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논리적인 대응법을 지도해야 한다", "독도연구소에 중등 사회과 교사들을 초청해 이 같은 인식을 공유하자"는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벡 대표는 "한국인들이 식민지 역사 때문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신경이 예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제는 미국인들이 소니 대신 삼성을 사고 싶어하고 일본인이 한국 연예인에 열광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느냐"며 "한국인들도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독도=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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